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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 지배력' 빠진 기술보호법… 외국 자본에 기술 탈취 구멍 [산업기술 유출 사각지대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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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국선 '실질 지배'까지 보는데
韓은 형식만 따져 '반쪽짜리 법안'
외국자본 우회 인수 땐 속수무책
5년간 97건 기술 유출·25조 피해
산업기술보호법 제도적 보완 시급

'실질 지배력' 빠진 기술보호법… 외국 자본에 기술 탈취 구멍 [산업기술 유출 사각지대 여전]
국내 핵심 산업기술을 보호하겠다며 정부가 추진한 산업기술보호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이 정작 핵심인 '실질 지배력' 규정을 담지 못하면서,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반도체·이차전지·방산 등 전략산업 전반에서 외국 자본의 기술 탈취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업계 전반의 우려가 고조되는 형국이다.

■외국인 판단기준 '실질지배력' 포함돼야

1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산업기술보호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의 입법예고 기간은 다음달 12일까지다. 정부는 지난 3월 개정안을 발표하고 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 강화 및 일부 심사 기준을 보완했지만, 외국 자본이 국내 법인이나 사모펀드를 통해 우회 지배하는 구조에 대한 규제 조항은 빠졌다.

현행 시행령 제18조의2는 외국인 또는 외국인이 지배하는 법인이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을 인수할 경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법인이 국내에 등록돼 있으면 외국 자본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더라도 신고나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해외 단체가 자금을 우회해 국내 기업을 간접 인수하는 경우에도, 현행 제도로는 이를 사전에 걸러내기 어렵다.

산업부는 "입법예고안으로도 외국인의 우회 인수를 감시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학계와 산업보안 전문가들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해석"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국내법인 명의로 운영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외국 자본이 통제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산업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확인된 기술 유출 사건은 97건, 피해액은 23~25조원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실제 피해 규모가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기술 유출 수법이 정교해지고 자금 출처도 복잡하게 위장되면서 법망을 피해가는 사례가 여전히 많다는 지적이다.

■형식적 기준에, 제도 실효성 떨어져

전문가들은 외국인 판단 기준에 '실질 지배력' 개념을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미국, 독일, 중국 등 주요국은 이를 이미 제도화한 상태다. 미국은 연방규정집(CFR) 제800.224항을 통해 외국인이 통제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단체를 외국인으로 간주하며, △자산 양도 △사업 방향 결정 △고위 임원 선임 등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까지 외국인 통제 범위에 포함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법인 등록지나 대표이사의 국적 등 형식적 기준에만 의존해,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한국벤처창업학회, 서울대 등 학계와 산업계는 실질 지배력 개념의 조속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국은 모두 실질 지배력을 기준으로 외국인을 정의하고 있다"며 "산업기술보호법을 개정해 국내법인을 통한 우회 인수에도 엄격한 심사를 적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2023년 외국계 자본이 지배하는 국내 사모펀드를 외국인으로 간주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국회 산업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해당 조항이 제외됐다. 올해 3월 발표된 시행령 개정안에서도 관련 내용이 빠지면서, 입법 논의는 사실상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moving@fnnews.com 이동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