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의 오페라는 사랑과 희생의 절정에서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그러나 그 감정의 무대 뒤편엔 언제나 '질투'라는 어두운 감정이 숨어 있다. 그의 여주인공들은 사랑에 몸을 던지지만, 그 사랑은 질투라는 불씨에 자주 휘말리며 비극적 운명으로 이끈다. 푸치니의 오페라에서 질투는 단지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 아니라, 파국을 초래하는 운명의 장치로 작동한다.
푸치니의 작품 '토스카' 속 여주인공 토스카는 연인 카바라도시를 향한 깊은 사랑과 동시에 강한 질투심을 품은 인물이다. 그녀는 연인이 그린 성모 마리아의 얼굴이 너무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불안을 느끼고, 모델이 누구인지 추궁한다. 이 불신을 간파한 악당 스카르피아는 그녀의 질투를 교묘하게 이용해 함정을 파고, 토스카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스카르피아를 살해하는 극단의 선택을 한다. 그러나 그녀의 노력은 헛된 희망으로 끝나고, 토스카는 절망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만약 그녀가 질투에 흔들리지 않았다면 운명이 달라졌을까.
푸치니의 '마농'도 이와 비슷하다. 마농은 화려한 삶과 부를 갈망해 다른 여성들을 질투하고 모든 시선을 한몸에 받길 원한다. 그녀는 연인 데 그리외를 떠나 더 나은 삶을 택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잃고 황량한 광야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질투와 욕망을 절제했더라면 그녀는 가난하지만 행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푸치니의 여주인공들 가운데 유일하게 질투에 흔들리지 않는 인물이 있다. 바로 '나비부인'의 초초상이다. 그녀는 남편 핑커턴을 끝까지 의심하지 않으며, 그가 떠난 후에도 순정 어린 사랑을 변함없이 간직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질투하지 않았기에 더욱 큰 비극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핑커턴의 변심을 조금만 의심했더라면, 그녀는 현실을 더 일찍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만을 믿은 초초상은 냉혹한 배신 앞에 무너지고, 결국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질투는 때때로 경계심을 일깨우고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기도 하다. 초초상은 그 감정조차 품지 않았기에, 더 깊은 절망에 빠진다.
푸치니의 오페라는 인간 감정의 본질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 감정은 무대 위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 속에서도 반복된다.
오페라를 제작하는데도 다양한 억측, 가십, 질투들이 난무하는 데 우리의 일상에서는 오죽할까. 푸치니의 여주인공들이 사랑과 질투의 틈바구니에서 길을 잃었듯, 우리도 언제든 같은 위험에 놓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질투에 흔들리기보다 그것을 뛰어넘어 진정한 가치를 지켜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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