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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美 대학 사태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서초포럼] 美 대학 사태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대학 길들이기에 나서면서 하버드를 비롯한 명문 대학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하버드대학에 대해서 학내 반유대주의 통제 강화,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프로그램 즉시 중단, 교수 채용과 입학관련 감사 수용 및 자료 제출 등을 요구했고 하버드가 이를 거부하자 3조 이상의 연방 보조금을 동결했다. 그뿐만 아니라 연구지원금 동결, 대학에 대한 면세혜택 취소, 해외 기부금에 대한 조사, 유학생 유치자격 박탈 등을 거론하며 전방위적 압박에 나섰다. 미국의 유수 대학들은 이를 대학의 자유와 가치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하버드와 연대하여 정부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맞서 싸울 것을 천명하고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대학들이 국가의 지원을 받으려면 정부가 정한 지침에 따르는 것은 당연하며, 이는 정부가 대학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연구 및 교육에 대한 지원을 볼모로 정부가 교수 채용, 학생 선발, 교육과정, 교내 학생활동 등 대학 운영 전반에 무제한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대학은 단순히 전문지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장소일 뿐 아니라 학문의 자유를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사회를 통합하는 정치경제적 이념들을 논의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중요한 보루 중 하나이다. 대학에 대한 자의적 통제는 곧 진리와 이념에 대한 통제로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과거 정권에 반대하는 교수들을 무더기로 해직시키고 경찰들이 교내에 상주하며 학생들을 감시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 시기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를 선도하며 선망의 대상이던 미국이 지금에 와서 대학의 자유와 독립을 걱정하는 지경이 되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교훈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괜찮은가? 우리나라는 국립대학은 물론이고 사립대학도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2009년 이후 계속 등록금이 동결되어 온 결과 등록금 의존율은 70%대에서 50%까지 떨어졌으며, 국고 보조금에 대한 의존율이 20%에 이른다. 등록금 계산에 포함된 국가장학금을 고려하면 실제 국가에 대한 의존도는 더 높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대학들이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들 수 있을까. 실제로 사립대학들이 과거 16년 동안 등록금을 올리지 못한 것도 정부가 공개적으로 국가장학금 지급 조건으로 등록금 동결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BK 프로그램 등 각종 연구비 지원 역시 공식적으로는 경쟁을 통해서 선정되지만, 교육부 심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교육부의 정책에 반하거나 심기를 건드린 대학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을 떨치기 어렵다. 오죽하면 사립대학들이 교육부 출신 공무원들을 고위 교직원으로 영입하는 소위 '교피아'란 말이 생겨났겠는가. 하버드대학이 미국 정부에 맞설 수 있는 것도 70조 이상의 어마어마한 대학기금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로 곳간이 든든한 대학은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대학의 발전과 공공성 강화를 위해 국가가 대학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지원의 조건으로 정부가 대학에 대해서 높은 수준의 교육과 연구, 투명한 지배구조와 예산 집행, 국가와 사회적 가치에 부응하는 대학 운영 등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이런 요구조건들은 공론화 과정을 통해서 명시적으로 법제화되어야 하고, 정부 지원대상 선정은 그 절차와 과정이 투명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무조건 정부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식은 자의적으로 대학들을 통제하여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획일적인 교육정책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크다. 지금 미국에서 발생하는 일이 훗날 우리나라에서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