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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사법부 부정은 '사회 질서' 부정

[기자수첩] 사법부 부정은 '사회 질서' 부정
김동규 사회부 기자
일본인 친구들이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부터 '한국이 위험해 보인다'는 말을 자주 한다. 실제 위험해 보인다. 지난달 4일 전까지 헌법재판소 앞에서 진을 치던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 지난 1일 이후부터 법조단지에 모인 민주당 지지자들 등. 이들은 정치성향과 지향점 등 분명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등 '사법부'를 불신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사법부에 대한 비판을 표출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비판이 아닌 비난이라면, 나아가 '사법부'로 표현되는 우리 사회의 질서를 부정하는 행위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모두 '사법 카르텔'이란 용어를 만들어 자신들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하고자 한다. 기존 세력인 '사법부'가 법조계의 프로토콜 등 법학 지식만을 사용해 신흥 세력인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기업 연합으로도 번역되는 카르텔이란 개념어의 핵심은 경쟁에 있다. 경쟁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신흥 세력이 기존 세력의 프로토콜을 시장에서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하는 데 있다. 법조계란 사회에서 법조계의 프로토콜로써 발화하는 '사법부'의 행태가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말처럼, 인간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공동체에서 다른 구성원과 관계를 맺으면서 존재한다. 인류사적 관점에서 시민으로 불리는 개인은 결국 민족공동체로 환원될 수밖에 없다. 이 단계에 조응하는 사회 형태인 자본주의 사회의 경우 분업 관계에 의해 지탱된다고 애덤 스미스와 게오르크 헤겔, 카를 마르크스 등 이른바 근대 학문의 문을 연 선학들은 말한다. 작업장 내 분업에서 사회적 분업까지,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하고 타인의 전문성을 인정하며 쌓인 신뢰가 사회를 통합하고 움직인다. 그렇기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이 지니지 못한 전문성을 지닌 타인을 인지하고 이들과 협업하는 등 관계를 맺어야 한다.

안국동과 서초동에 모인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문형배·이정미 전 헌법재판관 등의 과거 이력을 정치성향으로 단정 짓는 '후려치기'식 인신공격이, 지귀연 판사의 '도덕적' 흠결을 부각하기 위한 '지르기'식 의혹 제기가 사법권 행사라는 사회 운영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묻고 싶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법부'의 구성원을 부정해 버리면 그들의 역할을 누가 수행할 것인지 등 대안은 있는지 묻고 싶다. 사회의 질서, 즉 '관계의 전제'를 부정해선 안 된다.

kyu0705@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