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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모든 것이 찬란했음을…'민중 시인' 신경림의 마지막 메시지 [책을 읽읍시다]

지나온 모든 것이 찬란했음을…'민중 시인' 신경림의 마지막 메시지 [책을 읽읍시다]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신경림 / 창비
"지금 살아 있어서 아름답고, 아직 살아 있어서 아름답고, 머지않아 사라질 것 같아서 더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고 신경림 시인)

'농무', '가난한 사랑 노래' 등을 쓴 문단의 원로인 고 신경림 시인(1935∼2024)의 첫 유고 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가 출간됐다. 작고 1년 만의 첫 유고 시집이자, 작고 전 마지막으로 펴낸 '사진관집 이층' 이후 11년 만의 시집이다. 그가 살아생전 모든 만물의 소중함을 강조한 만큼 이번 첫 유고 시집의 제목으로 채택된 것이다.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도종환 시인은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몇 달 동안 신경림 선생의 아들이 원고를 보내준 것을 출판사 창비와 함께 분류해서 엮고 해설을 썼다"며 유고 시집 출판 배경을 밝혔다.

이어 "아직 발표되지 않은 시 또는 기존에 문예지에 발표했으나 시집에 실리지 않은 시들을 담았다"며 "기존 시집에 실린 것들은 싣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시집의 제목은 시 '살아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의 첫 번째 행에서 따 왔다. 이 시는 언젠가 끝나는 생명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그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도 시인은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 유한함을 슬퍼하지 말고 받아들여서 살아 있는 동안 자기를 긍정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시"라며 "선생님이 남아있는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말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제목으로 삼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신경림 시인의 유족이자 막내 아들 신병규씨는 "아버지가 즐겼던 책과 유품이 그대로 쌓여있다"며 "평소 아버지가 컴퓨터로 작업하셨는데 파일을 탈탈 털어서 (유고 시집으로) 정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겨우 1년 됐는데 정리가 좀 하나씩 시작되는 느낌"이라며 "하나씩 정리를 해나가야 할 거 같고 유고 시집을 시작으로 남은 숙제를 잘해야 할 거 같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내년부터 또 다른 신경림 시인의 유고 시집과 산문집 등이 출간될 예정이다. 이번 유고 시집은 삶과 죽음, 사람과 자연 등 깊이 있는 주제를 특유의 포근하고 쉬운 언어로 풀어낸 시 60편이 수록됐다. 굴곡진 삶의 애환을 친근한 시어로 담아내 '민중 시인'으로 불렸던 시인의 한결같은 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이밖에 노년의 신경림 시인이 고단했던 자기 삶을 돌아보며 지나온 길에 아름다움이 있었음을 발견하는 시들이 실렸다. 순서상 가장 먼저 실린 시 '고추잠자리'가 대표적이다.


흙먼지에 쌓여 지나온 마을 / 멀리 와 돌아보니 그곳이 복사꽃밭이었다 / 어둑어둑 서쪽 하늘로 달도 기울고 / 꽃잎 하나 내 어깨에 고추잠자리처럼 붙어 있다 (고추잠자리 본문 중)

한편, 신경림 시인은 농민들의 한과 고뇌를 담은 시 '농무'와 삶의 애환과 사랑을 노래한 '가난한 사랑 노래' 등 수많은 애송시를 남겼다. 그는 투병 끝에 지난해 5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15일 신경림 시인의 모교인 동국대에서 '추모 문학의 밤'이, 1주기 당일인 오는 22일 고인의 고향 충청북도 충주에서 신경림 문학제가 열린다.

유선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