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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열풍 시들… 친환경 사업 줄줄이 좌초 [불확실성에 흔들리는 ESG 경영 (1)]

석화업계 ‘폐플라스틱 재활용’ 제동
SK·롯데 등 공장 건설 연기·중단
中 공급과잉에 글로벌 정책 혼선
정부지원 지연돼 투자 속도 못내

폐플라스틱 재활용을 앞세운 석유화학업계의 친환경 투자계획에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기조에 따라 대규모 투자를 예고했던 SK·롯데·LG 등 주요 석화기업들은 최근 들어 사업 완공 시점을 늦추거나 가동을 중단하는 등 실행을 유보하는 상황이다. 업황 악화에 중국발 공급과잉과 글로벌 정책 혼선, 여기에 정부의 사업재편 로드맵 지연까지 겹치면서 친환경 전환을 위한 핵심 투자마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석유화학사들은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관련 사업 추진을 연이어 보류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은 울산에 추진 중이던 연산 32만t 규모 폐플라스틱 재활용 공장 건설 일정을 올해 초 무기한 연기했다. 당초 올해 내 완공을 목표로 했던 이 프로젝트의 투자 규모는 1조8000억원에 달한다. 프랑스 북동부 생타볼 지역에 계획했던 연산 7만t 규모 재활용 공장도 같은 이유로 추진이 중단됐다.

SK지오센트릭은 △고순도 폴리프로필렌(PP) 추출 △페트(PET) 해중합(촉매를 활용해 페트 고분자를 해체하는 기술)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생산 등 3개 분야에서 글로벌 파트너사와 사업화를 추진해왔으나, 최근 업황 부진에 따른 효율경영 기조에 따라 의사결정을 보류한 상태다.

롯데케미칼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울산2공장 내 해중합 설비(연 4만5000t)와 화학적 재활용 PET(C-rPET, 연 11만t) 생산시설은 지난 2021년 약 1000억원을 투자해 지난해 가동을 목표로 했지만, 현재는 완공 시점을 오는 2027년으로 3년 늦춘 상태다.

공장 가동중단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LG화학은 충남 대산에 추진 중이던 생분해성 플라스틱(PBAT) 소재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고, 양산 계획도 무기한 연기했다. 당초 시생산을 거쳐 지난해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었지만, 수요 둔화로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전면적인 계획 조정에 들어갔다.

이처럼 친환경 신사업 추진이 주춤한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시장 단가가 급락하면서 사업성이 크게 떨어진 데다 글로벌 ESG정책에 대한 동력이 전반적으로 약화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석유화학 중심의 산업정책 기조로 회귀하면서 ESG 전환을 견인하던 국제적 흐름이 한층 느슨해졌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정책지원 지연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상반기 중 사업재편 지원 로드맵을 내놓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일정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김평중 한국화학산업협회 본부장은 "대선과 새 정부 출범, 장차관 인선 등이 맞물리며 석화산업 관련 정책 추진이 불가피하게 지연되고 있다"며 "아쉬운 측면은 있지만 불가피한 변수라는 점에서 업계 내 일정 부분 공감대는 형성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moving@fnnews.com 이동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