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행동 하지 않았더라면
미래는 어떻게 달라질까
AI 시간의 비가역성 극복
이상완 KAIST 뇌인지과학과 부교수·신경과학-인공지능 융합연구센터장
세상은 본래 상태로 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 현상으로 가득하다. 외부의 개입이 없다면 입자의 무질서는 증가한다. 쏟아진 물은 주워담기 어렵고, 시간의 흐름은 되돌릴 수 없으며, 죽음에서 삶으로 되돌릴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벌어진 일을 받아들이며 마음을 다잡는다. 이렇게 비가역성으로 가득찬 인간 세계와 달리 인공지능은 가역성을 추구한다.
공학에서는 신호 속 잡음을 제거하는 데 집중해 왔다. 더 깨끗한 통화, 선명한 고화질 화면, 잡음에 강인한 카메라 센서 등. 오토 인코더와 같은 초기의 생성 인공지능 역시 데이터 속 잡음을 제거하며 데이터를 생성하는 법을 학습한다. 그러나 데이터에 잡음이 생기는 경우의 수는 무수히 많기에, 한 번 잡음을 제거한 깨끗한 데이터를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잡음 제거 과정은 일반적으로 비가역적이다.
그러나 현재 생성 인공지능의 선두주자인 디퓨전 모델(Diffusion model)은 순수한 잡음에서 원본 데이터를 복원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제거했던 잡음을 데이터 속에 추가하는 과정까지 학습함으로써 비가역성을 극복한다. 마치 방 청소를 끝낸 뒤, 쓰레기를 주워담은 역순으로 재배치하여 청소 이전의 지저분한 상태를 재현하는 꼴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왜 전력과 메모리를 소비하면서 쓸데없어 보이는 일을 할까. 잡음을 역순으로 다시 추가하는 과정은 데이터 왜곡이 발생하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처럼, 인공지능도 결과를 넘어 과정을 배우며 발전한다. 방이 어질러지는 과정을 이해하면 더 효과적으로 청소할 수 있고, 회사의 손실 발생 과정을 분석하면 수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고, 정치인이 특정 집단으로부터 미움받게 된 과정을 이해하면 지지율을 높일 수 있으며, 학생이 문제 풀면서 실수한 과정을 알면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더 잘 풀 수 있다. 성공을 거슬러 빠르게 실패하는 과정을 알수록 오히려 성공의 길이 선명해진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은 시간의 가역성을 과감하게 만들어내기도 한다. 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의 파인튜닝, 딥시크의 전문가 모듈 할당과 가치함수 계산, 그리고 알파고의 기반 기술인 '강화학습'은 미래의 성공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최적의 전략을 찾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결과의 책임을 과거의 행동과 같은 잠재적 원인으로 재분배해야 한다. 강화학습은 과거의 사건과 미래의 예측을 컴퓨터 메모리에 저장하고, 현재의 결과를 잘개 쪼개 과거에 재분배하여 시간의 가역성을 만들어낸다. 현실의 시간은 비가역적이지만, 컴퓨터 메모리에 저장된 기억 속 시간은 순서를 뒤집을 수 있으므로 가역적이다. 인간의 뇌가 강화학습과 유사한 정보처리 과정을 통해 습관과 전략적 행동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바둑의 복기는 이러한 인간의 기억 속 시간 가역적 학습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좋은 사례이다.
인공지능은 인과관계 분석에서도 메모리를 활용해 시간의 비가역성을 극복한다. 카운터팩추얼 분석(Counterfactual analysis) 기반의 인공지능은 '만약 이러한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미래는 어떻게 달라질까'를 시뮬레이션하며, 통제집단 합성법(Synthetic control)에서는 비슷한 사건들을 바탕으로 현재 결과 이전의 본래 상태를 추정한다.
GPT, 제미나이, 딥시크와 같은 최신 언어모델의 핵심인 자기 주의집중(Self-attention) 모듈은 입력 데이터를 메모리에 한꺼번에 저장하고, 시간 순서에 관계없이 데이터 간 상관관계를 학습하면서 시간적 가역성을 만들어낸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격언은 시간의 비가역성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은 기억 속에서 시간의 가역성을 만들어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마음 다스림 글 읽기와 언어모델을 잠시 멈추고, 실패의 기억을 견딜 수 있는 수준에서 복기하여 시간의 비가역성을 극복한다면 격언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상완 KAIST 뇌인지과학과 부교수·신경과학-인공지능 융합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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