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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사법의 정치화 아닌, 정치의 사법화

[fn광장] 사법의 정치화 아닌, 정치의 사법화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사법이 정치화되었다는 비판이 들린다. 특히 여야 정치권이 사법부 비판하기의 진원지다. 사법부 구성원의 일부는 그런 비판에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권이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정치권은 사법을 정파적 책략의 도구로 쓰는 정치의 사법화를 반성해야 한다. 그게 더 근본적인 문제다. 사법의 정치화도 정치의 사법화로 인해 부추겨진 면이 크다.

사법부는 스스로 정치화되기 힘들다. 입법부나 행정부처럼 원하는 의제를 주도적으로 다룰 수 없고, 누군가의 문제 제기에 수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을 뿐이다. 사법 판결이 여야 한쪽의 칭찬을 받고 다른 쪽의 원성을 산다면 그 정치적 파장이 큰 사안을 정치권이 사법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사법부엔 정치행위에 과도하게 관여하지 않는다는 자제의 규범이 있다. 부득이 정치적 폭발성이 큰 사안을 다룰 때도 법조문과 선례를 충실히 따른다는 규범이 작동한다. 애당초 법조문을 만든 곳도 사법부가 아니다.

이런 수동적 사법부에 대한 정치권의 압력과 비난이 도를 넘고 있다.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에 대한 탄핵 판결이나 여타 사법 판단이 나올 때마다 한쪽은 사법부가 살아있다고 환호하고, 반대편은 사법부가 정치에 오염됐다고 분노를 뿜는다. 판결이 엇갈릴 때면 여야의 의견도 뒤바뀐다. 유력 대선 후보와 그 가족에 관련된 각종 재판도 마찬가지다. 판결마다 여야는 사법부에 극찬이나 저주를 퍼붓고 상황에 따라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한다. 판결에 불만을 품는 측의 반응이 특히 극렬하다. 담당 법관의 신상까지 털며 인신공격에 나선다. 마치 판정이 불리할 때마다 덤벼들고 심판의 인격을 모독하는 운동선수를 보는 듯하다.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는 사법 판결이 늘어난 건 정치권의 자업자득이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여야 대결이 극한으로 치달아 교착상태에 빠지는 경향이 커진 결과다. 정치 무대에서 제도 경로를 통한 합의가 힘들어지면서 여야는 거리로 나가 지지층을 선동할 뿐 아니라 고발·고소·탄핵을 남발해 상대편을 망신 주고 법망으로 괴롭히려 든다. 이편이 사법 책략을 쓰면 저편도 맞대응해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처럼 정치싸움에 사법 절차를 도구로 동원해 놓고도, 여야는 사법부에 책임을 전가하고 여차하면 동네북처럼 두들겨댄다.

정치권의 책략이 아니어도 오늘날 시대 변화로 인해 사법부는 정치적 의미가 담긴 사안을 점점 많이 다룰 수밖에 없다. 한때 민주주의는 자유 경쟁과 선거를 핵심으로 중시하는 최소 절차주의를 이상으로 삼았고, 이 속에서 정치는 다수 측이 주도하고 소수 측은 떠밀려가는 게 당연시되었다. 정치 사안이 사법 판결로 이어지는 일은 적었다. 그러다가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 인식이 절차적 차원뿐 아니라 내용적 측면에서도 더 깊고 다각적인 고민을 요구하는 쪽으로 점차 변했다. 민주주의적 정치는 자유 경쟁뿐 아니라 공정성, 형평성, 참여성, 숙의성, 대표성, 다양성, 공익성, 포용성(특히 소수의 배려) 등 여러 가치를 조화롭게 추구해야 하는 복잡한 시대로 바뀌었다. 사법 판결을 부르는 정치 사안이 늘게 된 것이다.

이런 거시적 시대 환경을 고려하는 참된 정치인이라면 사법부가 정치 늪에 너무 깊이 빠지지 않게 신경 써야 한다. 그러나 근래 여야 정치권은 그러기는커녕 양극적 당쟁의 일환으로 사법 절차를 오용·남용하고 있다. 사법마저 과하게 정치화돼 국민의 불신을 사면 국가체제는 위기의 벼랑으로 몰린다. 민주주의와 아울러 법치의 근간마저 훼손된다.


정치권은 이제 사법부를 그만 흔들고, 정치적 파장이 큰 사법 판결이라도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사법부의 권위를 살려야 한다. 물론 사법 판결이 다 순수하고 완전한 건 아니겠으나, 그에 대한 견제는 정치권이 아닌 학계·언론계·시민사회·법조 전문가들의 몫이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