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왕자호동' 등 만든
한국 창작발레 대가 문병남
천국에서도 춤추고 계실 것
김지영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한국의 발레는 최근 들어 빠르게 큰 성장을 이뤄내며 K문화의 세계화에 발맞춰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소재로 한 한국적인 발레를 많이 제작하고 있다. 국립발레단의 '허난설헌' '왕자호동' 같은 창작 발레뿐만 아니라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은 초연 후 오랜 기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여 유니버설발레단의 대표 레퍼토리가 되었고, '춘향'도 뒤를 이어 발레단의 중요 레퍼토리가 되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한 창작 발레가 많이 제작될수록 우리나라의 발레 수준을 향상시키며 한국 발레를 세계에 알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다양한 창작 발레 중 우리가 모두 아는 독립운동가인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창작 발레가 있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얼마 전 작고하신 문병남 선생님의 작품으로 안중근 의사를 통해 우리 민족의 강인함과 우수함, 내면의 아픔을 함께 표현하여 뮤지컬, 영화와 더불어 많은 이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일 것이다. 문병남 선생님은 과거 남성 무용수 부재 속에서 1984년 국립발레단에 입단, 스타 무용수로서 10년간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를 지냈다. 이후 국립발레단 지도위원, 상임안무가, 부예술감독으로 재직하였고 한국을 대표하는 레퍼토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M발레단 창단 후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한 창작 발레작품울 만드는 것을 자신의 평생 소명으로 여기며 많은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는 국립발레단과 M발레단에서 '왕자호동'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처용' '오월바람' 등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한 창작 발레를 만들었고 발레 안중근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서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는 안중근의 유언에서 기획되어 안중근의 독립을 위한 강한 열망과 해방된 조국의 자유를 발레라는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작품으로 2015년 초연 후 매년 무대에 올라 회를 거듭하면서 스토리, 의상, 무대, 연출 등 수정 보완을 거쳤다. 안 의사가 하얼빈 의거 후 감옥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는데 독립운동가로서의 투지와 고뇌, 절망, 희망을 춤으로 표현했다. 아내 김아려와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2인무, 위병부대 활동, 전투를 보여주는 역동적인 남성 군무, 영상기술 등을 활용한 현대적인 무대 연출이 작품의 몰입도를 높여주며 관객에게 시각적인 만족과 함께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우리가 뮤지컬, 영화 등과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보아왔던 안 의사의 이야기를 발레라는 장르를 통해 색다른 감흥을 관객에게 불러일으키는 작품인 것이다.
발레를 배웠던 학생시절 나는 문병남 선생님의 춤을 보고 컸고, 국립발레단에 재직하는 동안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2022년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에서 안 의사 부인 역인 김아려 역을 했을 때 김아려 여사에 관한 기록이 많이 없다 보니 나만의 조사와 연구를 하여 상상력으로 표현해 내야 했는데 문 선생님은 행복한 결혼,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에 대한 고뇌와 절망, 슬픔에 대한 나의 해석과 의견을 많이 존중해 주어서 초반엔 어려웠지만 흥미롭게 작품을 한 기억이 있다. 그의 발레에 관한 열정은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는데 얼마 전 간암 선고를 받고도 작품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았다.
돌아가신 후 간병인 선생님께서 말씀하길 항상 발레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사셨고, 발레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눈이 반짝이셨다고 한다.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할 때도 '내가 나중에 발레 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를 할 테니 간병인 선생님은 산초판자를 하시오'라고 말씀하셨다고. 이후 장례식에 오셔서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전혀 모르던 발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하였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도 발레 팬을 만들고 간 그는 모든 작품에 열정적이었고, 특히 발레 안중근은 문병남 선생님의 모든 열정이 담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제목처럼 아마도 문병남 선생님은 천국에서도 춤을 추고 계실 것이다.
김지영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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