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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전문성 없는 재판, 공정도 없다/홍장원 대한변리사회 고문

기술판사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

[파이낸셜뉴스]
[기고]전문성 없는 재판, 공정도 없다/홍장원 대한변리사회 고문
홍장원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 지식재산특보단장/대한변리사회 고문.

지금 대한민국에서 사법개혁의 요구가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형사·민사재판은 물론, 선거재판에 이르기까지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날로 낮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대선을 앞두고 대법원이 내린 이례적인 속전속결 판결은 사법의 중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공정성은 사법의 본질이다. 그러나 그 공정성은 공정해 보이는 절차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아무리 절차를 지켜도, 그 판단이 사안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내려진 것이라면, 그 판결은 결코 정당할 수 없다. 즉, 전문성이 없는 사법은 공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술과 특허 관련 분쟁이다. 이 분야는 복잡한 과학기술 지식과 산업 현실에 대한 이해 없이는 제대로 된 판단이 불가능하다. 물론 현재도 법원은 ‘전문심리위원’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판결을 내리는 당사자가 아니라 단지 ‘보조자’에 불과하다. 결국 최종 판단은 해당 기술에 대한 전문적 이해가 부족한 일반 법관에게 맡겨진다.

이러한 구조로는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는 더 이상 ‘보조자’ 수준에 머물러선 안 된다. 기술 그 자체를 이해하고 법적 쟁점을 함께 꿰뚫어볼 수 있는 ‘기술판사’의 도입이 절실하다.

유럽 주요국과 영국은 이미 이를 제도화했다. 독일은 기술 이해도가 높은 판사를 ‘기술판사(Technischer Richter)’로 양성해 특허소송에 실질적으로 참여시키고 있고, 영국은 특허 전문 법관(Patent Judges)을 별도로 두어 고도의 기술적 분쟁에 대응한다. 이 제도는 단순히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을 통해 사법의 공정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수단이다.

대한민국의 사법개혁도 이제 ‘형사사법’의 틀을 넘어야 한다. 이공계 중심의 산업사회에서 기술분쟁은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그 이해 없이 판결이 내려지는 구조는 국가 경쟁력에도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다.

전문성 없는 판결은 결국 산업의 발목을 잡고, 정의를 흐린다. 이제는 기술과 법이 만나는 최전선에서, 기술을 아는 판사가 직접 판단을 내려야 한다.
법은 현실과 유리된 섬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를 읽고 대응하는 지적 거버넌스여야 한다.

기술판사 제도의 도입, 더는 미룰 수 없다.

과학과 기술을 이해하는 사법, 그것이 진정한 사법개혁의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홍장원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 지식재산특보단장/대한변리사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