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근거, 논거 부족한 ‘카더라’ 식 의혹 제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박용후 / 관점 디자이너
[파이낸셜뉴스] 최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미국 인공지능 방산기업 쉴드AI(Shield AI)와 체결한 계약을 둘러싸고 논란이 불거졌다. 일부 언론은 이 계약이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했고,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 KF-21과의 연관성, 로열티 부담, 수출 차질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그러나 실제 계약의 성격과 경과, 해당 회사의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이러한 의혹은 상당 부분 사실에 기반하지 않거나 과장된 ‘카더라’ 식 의혹 제기임이 이미 드러났다.
KF-21과 무관한 무인기 AI 실험
이번 KAI-쉴드AI 계약은 KF-21 전투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이 양사의 주장이다. 이 계약은 KAI가 개발 중인 차세대 다목적 무인기에 인공지능(AI) 조종 기술을 시험 적용하기 위한 기술 실험 계약으로, 유인 전투기 플랫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양사는 분명히 밝혔다.
KAI는 이번 협업의 목적이 자사가 개발 중인 AI 조종 알고리즘을 테스트하는 데 있으며, KF-21과 같은 한국 공군의 주력 기종과는 무관함을 명확히 했다.
또한 이 계약은 졸속으로 이루어진 단발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KAI가 2년여에 걸쳐 글로벌 AI 기업들과 협력을 타진해 온 장기 검토의 결과물이다. 그중 하나로 선택된 것이 쉴드AI와의 이번 실험적 계약이다. 계약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는 한 장면이 있다. 지난해 미 공군 장관인 프랭크 켄달이 F-16에 해당 무인 파일럿 기술이 장착된 전투기를 타고 인간 조종사와 도그파이트(공중전)를 벌이는 장면이 언론에 공개되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를 방송한 NBC의 리포터는 “이러한 기술을 보유하고 실제 전투기에 성공적으로 적용한 군대는 전 세계에서 미국뿐”이라는 국방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바 있다.
보안이 요구되는 경우, 수의계약은 일반적인 방식
계약 형식이 ‘수의계약’이라는 점을 문제 삼는 시각도 있으나, 이는 방산 분야에서 흔히 적용되는 합법적 방식이다. 특히 전략적 기술 협력이나 보안성이 요구되는 프로젝트의 경우, 수의계약은 일반적인 선택지다. 이번 계약은 KAI 내부 법무실과 조달 부서가 전 과정에 참여해 체결됐으며, 미국과 한국 양국의 관련 법령을 모두 준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쉴드AI 역시 해당 계약이 미국 수출 통제법과 한국 계약법을 모두 충족했다고 밝혔다. 즉, 이번 계약은 단순히 요건을 갖췄다는 수준을 넘어 법적 타당성과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한 공식 협약이다.
실체 없는 ‘카더라’식 로열티 주장
일부 언론 보도는 KAI가 쉴드AI에 과도한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며, 이로 인해 향후 수출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하지만 양사는 이번 계약에 로열티 조항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계약은 AI 조종 기술의 성능을 단기적으로 검증해보는 실험적 성격의 계약이므로, 로열티 지급이 발생할 구조가 아니다. KF-21 개발이나 수출과도 무관하며, 계약이 해당 전투기 사업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른, 증거와 근거 없는 일방적 주장이다. 쉴드AI 또한 이번 계약은 비공개 기술 실험 계약일 뿐이며, KF-21 관련 논의는 전혀 없었다고 재확인했다.
국내 파트너 선정은 해당 회사의 몫이자 권한
쉴드AI의 한국 파트너로 ‘퀀텀에어로’가 선정된 점을 두고도 의혹이 제기됐다. 일부는 이 회사 대표의 과거 업력이나 규모를 문제 삼았지만, 쉴드AI는 기술력, 장기 비전, 헌신도 등을 기준으로 평가해 파트너를 선정했다고 명확하게 밝혔다.
이는 단순한 국내 대리점 계약이 아니라, 장기적 기술 협력과 공동 개발을 염두에 둔 전략적 선택이라는 것이 쉴드AI의 입장이다. 방위산업 특성상 신생 기업이라도 미래 가능성과 신뢰도가 확보되면 협력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쉴드AI의 선택 기준은 이를 반영한 것이다.
논란의 실체는 정보 부족에서 비롯된 오해
결국 이번 논란은 ‘수의계약’이라는 외형, ‘KF-21’이라는 상징성, ‘AI’라는 낯선 기술 요소가 결합되며 발생한 정보 비대칭의 산물이다. 방산 계약은 보안과 전략적 기밀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공개 정보가 제한적이며, 이로 인해 사실관계가 왜곡되거나 불완전한 해석이 확산되기 쉽다.
또한 일부 언론은 ‘방산’이라는 단어와 ‘비리’를 붙여 시선을 끌고, 한국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비꼬는 제목을 달았다. 해당 영상에는 수천 개의 비난 댓글이 달렸다. 잘못된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한 의혹 제기에 직업에 대한 비하까지 결합된 태도였다.
정부와 기업은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정확하고 투명한 팩트 전달이 필요하다. KAI와 쉴드AI가 신속하게 입장을 발표한 것도 바로 이러한 우려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계약은 오히려 한국 방산 기술이 글로벌 AI 생태계와 연결되는 의미 있는 기술 확보 시도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제 방위산업은 독자 개발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힌다.
민간 기술과의 융합, 개방형 협력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자주국방 실현을 앞당기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논란보다는 사실에, 의혹보다는 기회에 주목해야 할 때다. 그래야 대한민국 국방이 강해진다.
박용후 / 관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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