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
저출산율과 급속한 고령화는 우리 역사상 처음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초래하고 있다. 주조, 금형, 용접, 표면처리, 소성가공이나 열처리 등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는 뿌리산업과 건설업, 물류·운수업 등 숙련노동력이 필요한 업종들은 더욱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청년층의 취업 기피가 심하고 생산 자동화도 쉽지 않아 특히 문제다.
한국은 근로자 1만명당 산업용 로봇 수가 1012대로 세계 1위이고 완성차, 전자기기 등의 체계업체들은 많은 공정이 자동화 혹은 스마트화되었으나 이들의 1차 이상 2·3차 협력업체들은 적지 않은 공정을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다. 한 근로자가 빠지면 생산공정이 중단될 정도로 노동의존성이 높다. 고령자 한 명의 은퇴가 생산차질을 발생시킬 우려도 있다.
고용노동부에 의하면 제조업 인력부족률은 3.0%, 건설업은 2.1%, 운수·창고업은 5.4%로 나타난 가운데 제조업은 18.3%의 일자리를 제때 충원하지 못하고 있으며, 운수·창고업은 이 숫자가 34.8%에 달하고 있다. 뿌리산업진흥센터에 의하면 뿌리산업의 경우 2018년 부족인원은 2568명이었으나 2023년에는 1만8232명으로 5년 만에 7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령자 계속고용은 최근 화두 중 하나다. 예를 들어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법정 정년을 현행 60세로 하되 2028년부터 퇴직 후 지속근무를 희망하는 근로자는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까지 정년퇴직 후 재고용을 의무화하자고 한다. '공익위원 제언'이어서 강제력은 없으나 논쟁거리가 될 수는 있다. 이미 민주당은 정년연장 TF까지 발족했다.
문제는 고령자 계속고용을 법제화로 추진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좋은 생각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획일적 접근은 기업들의 구체적 상황을 고려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들의 창의성을 저해하면서 고령자 취업기회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2022년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2022년 현재 300인 이상 사업체의 약 절반이 임금피크제와 퇴직자 재고용 제도를 운용 중이다. 한편 필자가 방문했던 부천의 한 화장품 용기 제조업체 대표는 "신입직원 중 절반은 퇴직자 중 선발하고 있다"면서 "요즈음 고령자들은 육체적 기능도 청년층과 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술과 경험이 축적되어 있어 업무성과가 높다. 고령 신입직원들은 본인이 원하면 향후 20년 정도는 일하도록 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법제화 없이도 고령자 재고용은 이미 활성화되고 있고, 고용 형태나 방법도 기업별 여건에 따라 창의적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정부나 국회의 어설픈 획일적 개입은 세계에서 최악수준인 우리 기업들의 고용유연성을 더욱 약화하면서 기업 경영실적 악화로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 법제화는 결국 기업이나 고령자 모두에게 해악이 될 수 있다.
한편 한 전문가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정년이 획일적으로 65세로 연장되고 현재의 연공급 체계가 유지되는 경우 59만명에 달하는 현재 60~64세 인력의 연간 고용비용은 30조원대를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청년 약 90만명을 신규 채용할 수 있는 규모다. 획일적 정년연장은 청년인력 채용여력을 약화시키면서 미래 우리 기업의 혁신역량을 훼손할 수도 있다.
결국 고령자 의무고용은 민간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위축시키면서 세대 간 고용관련 사회적 갈등도 야기하고 경쟁력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획일적 법제화는 좋은 도입 취지에도 불구하고 성과보다는 부작용이 커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고령자 재고용은 시장 흐름을 정확히 분석한 후 시장기능을 활성화하는 인센티브 제공 등의 방향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
이 시간 핫클릭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