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근 국제정세의 변화가 상당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우선 미국과 중국의 전방위적 경쟁이 '신냉전' 성격을 띠게 되었다는 점이다. 10년 전만 해도 우리는 미중 패권 경쟁이나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했지, 신냉전이라는 용어는 잘 쓰지 않았다. 현재는 다양한 뉴스 매체에서 신냉전이라는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학계에서는 미중 경쟁을 신냉전으로 규정할 수 있느냐에 대한 논란이 있다. 멜빈 레플러 버지니아대 교수는 작금의 미중 경쟁과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의 경쟁은 매우 달라서, 미중 경쟁을 신냉전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할 브랜즈 존스홉킨스대 교수나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미중 경쟁과 미소 경쟁 모두 전형적인 '강대국(Great Power)' 경쟁으로 형질적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견해다.
신냉전이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는 것은 미중 경쟁이 미소 경쟁의 냉전과 같이 전 지구적 차원의 전방위적 강대국 경쟁으로 변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냉전으로 인해 국제사회는 지구온난화나 팬데믹(유행병)과 같은 세계 공동의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나 전염병은 하나의 강대국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국제사회 모두가 협력해야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지구온난화와 국제보건 분야는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했지만 전방위적 미중 경쟁은 이들의 협력을 제약하고 있다.
미중은 온실가스 배출에 관한 국제표준을 서로 선점하려 경쟁하고 있고,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도 서로 협력하기보다는 자국의 백신을 외교적 도구로 활용하며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국제사회에서 '저개발' 역시 심각한 상황인데, 신냉전 이전에는 국제사회가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SDGs)' 달성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현재는 미중이 저개발 국가에 개발의 혜택을 제공하며 진영 선택을 강요하며 경쟁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AI와 같은 첨단기술 발전은 많은 편익을 제공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협력이 없으면 심각한 재앙으로 발전할 수 있다. 'AI의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턴은 적절한 규제가 따르지 않는다면 AI는 인류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지구적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핵에너지의 발전이 핵무기 개발로 이어지고 강대국들이 무한 핵무기 경쟁을 벌일 때, 미국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핵무기 확산 방지를 위한 국제협력 시스템을 구축했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국가들이 합심해서 AI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국제 거버넌스를 확충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위시한 자유주의 국가들은 힘을 모아 분쟁, 저개발, 질병, 기후변화 등 인류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협력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자국 이기주의와 냉전의 귀환 때문에 이런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의 도움은 한국의 번영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이제 선진국 문턱에 진입한 한국은 국제사회에 우리가 받은 것을 돌려줄 책무가 있다. 선진외교를 통해 한국은 소프트 파워, 즉 연성권력을 더 증진할 수 있고 국제사회에서 더 큰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의 '기여외교'는 결국 한국의 이익으로 환원될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 외교정책은 주요 공약이나 쟁점으로 부각되는 경우가 드물다. 특히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기여외교는 외교정책의 부차적인 영역으로 간주되며,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경향을 보여왔다.
그러나 기여외교는 점진적으로 선진국들의 국가 정책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 기여외교는 한국이 국제사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소통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다.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각자도생의 흐름이 두드러지는 국제 환경 속에서도 한국의 신정부는 국제사회에 기여하고 국제사회와 동행하는 선진외교를 추진해야 한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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