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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새 정부, 전략산업 육성 서둘러야

[서초포럼] 새 정부, 전략산업 육성 서둘러야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그동안의 정국혼란을 뒤로하고 새 정부가 출범하였다. 이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된 만큼 새 정부는 지체 없이 국가 전략을 다시 궤도에 올려야 할 시점이다. 특히 산업 경쟁력이 곧 국력의 척도가 되는 오늘날, 산업정책의 속도와 방향은 새 정부의 성과를 좌우할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정책공백기를 겪은 지금, 여야 간 견해차가 크지 않은 분야부터 신속하게 정책 드라이브를 걸 필요가 있다. 대선 과정에서 주요 후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했던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 전략산업이 대표적 분야이다. 이들 산업은 단순한 성장동력을 넘어 각국이 생존 여부를 걸고 경쟁하는 안보 및 기술 주권의 핵심 영역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그간 우리 정부도 이들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 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대출, 보증, 세제 혜택 등 간접적 지원이 대부분이었고 미국·일본·중국 등과 비교할 때 직접적 재정투입은 상대적으로 미흡했다. 기술 패권경쟁이 점점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더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들 전략산업은 단기간에 성과가 가시화되기 어려운 만큼 정책은 단발성이 아니라 지속성과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 기조가 흔들리는 일이 반복된다면 기업은 장기적 투자결정을 내리기 어렵고, 산업 생태계 전체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

공격적인 투자에 따른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도 경청할 필요가 있으나, 분야별·부문별 지출효율화를 통해 이러한 부담을 줄여나가는 것이 현실적 대안일 것이다. 그러나 정책은 단지 재정만 투입한다고 성공하지 않는다. 전략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각종 제도와 규제를 함께 정비하지 않는다면 지원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예산 지원에만 머무르지 않고, 산업 생태계 전반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정비와 규제혁신 과정에서는 민간기업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 산업 현실과 괴리된 법·제도는 결국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의 시급성과 중요성에 대해 여야 공히 인식을 공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 규제에 대해 의견이 갈려 '반도체 특별법'이 제정되지 못한 사례가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

더불어 정책적 지원과 함께 정책의 성과를 면밀히 평가하는 체계도 동반되어야 한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그 결과에 대한 주기적 점검과 피드백은 필수적이다.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는 과감한 보완과 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책 추진에 있어서는 정치적 유연성도 요구된다. 대통령의 공약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야당의 정책 중 실효성이 예상되는 내용은 과감히 수용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야말로 대통령이 강조한 '국민통합'이라는 국정철학에 부합하는 실용적 리더십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전 세계는 첨단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기술, 산업, 안보가 통합된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전 세계적 산업정책 경쟁을 촉발한 '중국제조 2025' 이니셔티브가 상당 부분 목표를 달성했다는 평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주요 첨단 제조분야에서 정면으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 기업들은 그야말로 백척간두에 선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지금 주요국들은 전략산업의 우위 확보를 국가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고, 과감한 재정지출과 제도혁신을 병행하고 있다.
우리라고 예외일 수 없다. 새 정부는 출범 초기의 정책동력을 활용해 과감하고도 신속하게 전략산업 육성을 추진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새 정부의 첫 시험대이자,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 지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