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성 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협회장·씨엔티테크 대표이사
벤처생태계는 자본시장과 연결되어야만 비로소 '생태계'로 불릴 수 있다. '창업→성장→회수→재투자'라는 선순환 고리가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기술도 '스케일업'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이는 곧 민간 자본이 유입되지 않는다는 뜻이며, 결과적으로 국가의 미래 성장동력이 고갈된다는 말과 다름없다. 지금 대한민국 벤처생태계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병목은 바로 회수(exit)시장 부재다.
2023년 한국의 벤처기업 인수합병(M&A) 규모는 단 32건, 총 2231억원에 불과했다. 이는 불과 1년 전인 2022년(81건, 2조2894억원)과 비교해도 절반 이하로 추락한 수치이며, 미국이 1년간 벤처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의 95%를 M&A로 회수하는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같은 해 한국은 전체 스타트업 회수 중 M&A 비중이 58%에 불과했다. 이는 스타트업이 기업공개(IPO)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불균형 구조를 낳고 있으며, 그 결과는 더 심각하다. IPO 심사기준은 갈수록 보수화되고 있고, 파두 사태 이후 시장의 신뢰도 또한 무너진 상황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초기투자자든 후속투자자든 리스크를 감당할 유인이 부족하다. 투자자 입장에서 회수구조가 막힌 시장은 '죽은 시장'이다. 국내 투자자뿐 아니라 해외 VC들도 같은 이유로 한국을 외면하고 있다. 최근 싱가포르, 미국, 아랍에미리트 등으로 한국 기술 스타트업들이 본사를 이전하는 이른바 '스타트업 엑소더스' 현상도 사실상 회수시장 부재와 무관하지 않으며 다음 세 가지가 그 핵심이다.
첫째, M&A를 활성화하기 위한 세제개편이 시급하다. 현재 중소기업 대주주의 주식 양도소득세율은 최대 20~25%에 달한다. 이는 M&A를 통해 기업을 매각하고 재도전하려는 창업자에게는 지나치게 큰 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 등은 창업 재도전 시 양도차익에 대해 과세를 유예하거나 비과세로 간주한다. 한국도 이에 준하는 수준으로 제도개편을 단행해야 한다. 또 인수기업이 M&A로 인수한 스타트업에 대해 일정 비율의 법인세 공제를 적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매수기업의 부담을 줄여야 시장이 움직인다.
둘째, 세컨더리펀드(2차 시장)를 확대해야 한다. 스타트업의 성장 기간이 장기화되는 현재 환경에서 초기투자자의 회수 압력을 줄여주는 유일한 수단은 세컨더리 시장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세컨더리펀드는 규모도 작고, 정책금융도 거의 없다. 세제혜택을 확대하고, 모태펀드 내 세컨더리 전용 출자 프로그램을 신설해 유동성 공급을 시스템화해야 한다. 특히 초기투자자를 위한 LP 매각 허용과 양도세 감면 조항이 동반되어야 한다.
셋째, 비상장 주식 유통 인프라를 정비해야 한다. 현재 비상장 주식 거래는 폐쇄적이고 비효율적인 구조로 이루어지고 있다. 정보 비대칭성, 거래 투명성 부족, 제도적 보호 미비 등이 문제다. 이에 대한 해법은 블록체인 기반의 '벤처증권 유통 플랫폼' 구축이다. 공공기관과 민간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유동화 거래소를 설립하고, 투자자 보호 규정과 정보공개 요건을 강화해 투명성과 신뢰를 높여야 한다.
궁극적으로 회수시장이 활성화되어야 민간 자본이 벤처로 몰리고, 성공한 창업자가 재창업에 나서며,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을 신뢰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투자환경 개선'의 문제가 아니다. 회수시장이 막히면 벤처는 자라지 못하고, 자라지 못한 벤처는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며, 일자리가 없는 국가는 미래가 없다.
새 정부는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한다. 회수 없는 창업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이제는 벤처 생태계를 진짜 선순환 구조로 만드는 구조적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화성 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협회장·씨엔티테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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