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
이재명 정부 국정운영의 나침판이 될 국정과제를 만드는 기획위원회가 출범하였다. 약 두 달 동안의 활동을 통해 국가경영의 철학과 비전을 정립하고, 외교안보에서 민생경제에 이르기까지 국정 전반에 걸쳐 100대 핵심 추진과제를 도출하게 될 것이다. 대선에서 발표되었던 각종 공약과 정부 관료들이 마련한 실행방안을 토대로 국정과제가 만들어진다. 물론 일반 국민과 전문가들의 의견도 수렴되어 반영될 것이다.
역대 정부가 만든 국정과제 계획서를 살펴보면, 국정기획 과정에서 피해야 할 몇 가지 오류들이 드러난다. 첫째는 충분한 숙의 과정 없이 대선 과정에서 임기응변적으로 제시한 공약을 핵심 국정과제로 포함하는 것이다. 민주국가에서는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에 도달한 정책이어야 효과적으로 실행될 수 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특정 정파나 집단의 요구를 수용하여 제시된 공약 중에서 이상적이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은 정책은 걸러내거나 장기적인 논의 과제로 돌려야 한다. 노동, 재정, 교육, 복지 등 사회 분야 공약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산업, 지역개발 관련 공약도 이러한 관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둘째, 정책의 목표와 수단이 도치된 국정과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중소기업 분야 국정과제 중 하나는 약속어음을 폐지하는 것이었다. 지급기한이 6개월 이상 장기로 발행된 어음은 중소기업의 수익성과 유동성을 악화시키고, 연쇄부도 위험을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이 정책의 원래 의도는 중소기업 납품대금에 대한 현금결제 비율을 높여서 어음할인에 따른 금융비용과 연쇄부도의 위험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구매 대기업이 지급보증을 하고, 은행이 대금을 중소기업에 선지급하는 상생결제 제도나 매출채권 팩토링과 같은 어음 대체결제 수단을 보급함으로써 해결될 문제였다. 하지만 약속어음 폐지를 국정과제의 목표로 설정함으로써 이후 정책은 약속어음 발행과 유통을 억제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대선 공약을 국정과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공약이 제기된 배경과 목적을 잘 살펴 수단이 목적을 대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셋째, 공약의 실행방안에 대한 행정부 관료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과정에서 정책의 개혁적인 목표는 사라지고, 과거 정책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정과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첨단산업 육성 공약은 과거와 같은 연구개발(R&D) 지원 방식으로는, 국가 간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글로벌 기업의 천문학적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따라서 첨단산업 육성을 목표로 하는 국정과제는 정부의 R&D 지원 이외에 모험자본 투자와 테스트베드 조성 등 다양한 혁신정책 수단의 조합이 필요하다. 관료들의 계획에만 의존할 경우 담대하고 창의적인 국정과제 기획을 기대하기 어렵다.
향후 5년의 국정운영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모든 과제에 대해 실행 수단과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국정기획위가 마련하는 계획서가 국정운영의 나침판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각각의 국정과제가 지향하는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때 참고할 만한 것이 1981년 경영컨설턴트 조지 도란이 제안하여 기업 경영에 폭넓게 적용되고 있는 SMART 원칙이다. 여기서 S, M, A, R, T는 구체적인 목표(Specific), 측정 가능한 목표(Measurable), 할당 가능한 목표(Assignable), 현실적인 목표(Realistic), 달성 기한을 설정한 목표(Time-bound)의 알파벳 첫 글자를 의미한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기획위가 SMART 원칙을 적용하여 작성한 국정운영 계획서를 주권자에게 내놓기를 기대한다.
이병헌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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