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마지막 경기에서 4타수 3안타 맹활약
통산 타율 3할의 컨택 능력 좋은 특급 대타
경기 후 눈물 펑펑
"시범경기도 나서지 못해 마지막 준비했다"
"올해 태어날 겨울이에게 자랑스러운 아빠이고싶어"
KIA 타이거즈 고종욱이 경기 후 인터뷰를 하고 있다.KIA 타이거즈 제공
[파이낸셜뉴스] 잠실야구장 1루 더그아웃 쪽. 경기가 끝난 뒤 TV 인터뷰 존에 선 KIA 타이거즈의 고종욱은 결국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이크 앞에서 눈물을 보인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팬들과 동료들도 숙연해졌다. 고종욱을 축하하기 위해 가던 심 단장도 마찬가지였다.
36세 베테랑이 흘린 눈물에는 그저 3안타 경기에 대한 감정만 담겨 있지 않았다.
고종욱은 이날(6월 29일) LG와의 원정경기에서 1번타자 좌익수로 선발 출전했다. 4타수 3안타 1타점 1도루. 날카로운 타격과 노련한 주루는 팀의 11-2 완승을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뭉클했던 것은 그가 이 무대에 다시 섰다는 사실 자체였다.
KIA 타이거즈 고종욱이 치리노스를 상대로 안타를 때려내고 있다.KIA 타이거즈 제공
그는 지난 시즌을 2군에서 시작했다. 시범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작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들지 못했다. 사실상 은퇴를 준비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 이미 팀 내 외야진은 포화 상태였다. 나성범, 최원준, 이우성. 이름만 들어도 누구 하나 밀어낼 수 없는 선수들이다. 김호령, 이창진까지 그 뒤를 받치는 자원들 역시 만만치 않았다. 고종욱에게 주어진 몫은 ‘대타 한 타석’. 그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그는 떠나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묵묵히 기다렸다. 타석에 설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위해 배트를 들었고,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자신의 감각을 유지했다. 올 시즌 타율은 0.375. 대타로 나왔을 땐 8타수 4안타로 무려 5할이다. 2023년에도 48타석 대타로 나서 0.295를 쳤다. 통계는 말한다. 고종욱은, 준비된 대타였다.
KIA 타이거즈 제공
그러나 이날 그의 눈물을 만들어낸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내가 몸이 많이 안좋았어요. 올해는 12월이면 딸이 태어납니다. 태명은 ‘겨울’이에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전에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내와 아이 이야기를 못했어요. 이번엔 꼭 말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선수 고종욱의 눈물은 아버지 고종욱의 울음이기도 했다.
이범호 감독은 그를 1번타자에 세웠다. 경기 전 “타격 감각만 보면 (최)형우와도 비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믿음은 적중했다. 고종욱은 통산 타율이 3할이 넘는다. 무려 3400타석에서 964개의 안타. 이는 증명된 통계다.
프로야구는 냉정한 세계다. 나이가 들면 미련 없이 내려놓아야 하는 자리가 있고, 성적이 떨어지면 과거의 이름은 지워진다. 하지만 어떤 선수는 그 룰을 거스른다. 자신의 존재를 다시 증명해내는 선수. 끝났다고 생각할 때 시작하는 선수. 고종욱은 그런 야구선수다.
KIA 타이거즈 제공
그리고 그 뒤엔 늘 그를 묵묵히 기다려준 가족이 있다.
그의 이야기는 한 경기를 위한 기록이 아니다. 은퇴를 앞둔 베테랑의 마지막 스퍼트도 아니다. 이제 시작된, 또 다른 야구 인생의 9회 말일 수 있다.
이름 세 글자를 말할 때, 우리는 종종 결과를 본다. 홈런, 타점, 타율. 하지만 때때로 그 숫자 뒤에 숨겨진 사람의 이야기는, 훨씬 더 깊고 아름답다.
잠실의 그 눈물은, 그런 이야기였다.
고종욱. 그는 지금도 야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고귀한 방식으로 말이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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