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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뛰어오르듯… ‘신분 상승’을 꿈꾸다 [이현희의 '아트톡']

겸재 정선 '개구리'
호암미술관서 대규모 기획전
색 없이 먹으로만 감정 나타내
과거 합격에 대한 ‘열망’ 표현

개구리 뛰어오르듯… ‘신분 상승’을 꿈꾸다 [이현희의 '아트톡']
서울옥션 제공
한국 회화사에서 '진경 산수'라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며 18세기 조선 회화의 전성기를 이끈 겸재 정선 작품들은 최근 호암미술관 대규모 기획전을 통해 다시금 회자되었다.

전시는 수묵산수화가 먼저 떠오르던 관념을 넘어, 인물화, 화조영모도, 초충도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울렀던 겸재의 작가적 역량과 문인으로서의 자의식을 확인케 했다.

특히 겸재가 화조영모, 초충 등을 소재로 그린 작품들은 산수화에 비해 수가 적어 진귀하다. 이런 작품들은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사실적 묘사뿐 아니라 소박하면서도 익살스러운 감정이 담겨 높은 가치를 지닌다.

자그마한 경물들을 소재로 한 '개구리(蛙)'는 한여름 여뀌 아래에서 더위를 식히던 개구리가 곤충을 발견한 뒤 기회를 엿보는 모습을 담고 있다. 색은 생략한 채 먹만 사용하여 자칫 단출할 수 있는 구성이지만 화폭을 분할하여 필법과 농담을 다양하게 풀어내어 보완했다. 개구리가 발견한 곤충은 여뀌와 개구리에 비해 아주 작고 연하게 표현해 포식자와 피식자간의 긴장감도 생생하다.

길에서 마주한 소소한 정경 같지만 작품 속 소재들은 각자의 의미를 담고 있다. 상단의 여뀌는 홍료(紅蓼)로 불리는데, '료'자가 '마칠 료'(了)와 발음이 같아 선비들에게 학문적 성취를 의미했다. 하단의 개구리는 입신양명을 상징하며, 펄쩍 뛰는 성질이 과거 급제를 통한 신분 상승의 꿈과 맞물린다.


조선시대 서책 크기(가로 18cm 세로 27.8cm)와 같은 작품 규격은 이런 의미를 더욱 강화하며, 삼대째 과거에 낙방한 가문을 일으키고자 했던 겸재의 열망으로도 해석할 수 있어 더욱 특별하다.

현재에도 많은 이들이 열망하는 것들이다. 제작 당시의 반향을 넘어 오늘날까지도 아름다움뿐 아니라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으니 앞으로도 시간을 초월한 명작으로 남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현희 서울옥션 아카이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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