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외부 유리창에 매물 정보가 게시돼 있다.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정부가 ‘조건부 전세대출’을 전면 차단하면서 7월 입주 예정인 아파트 단지들에 비상이 걸렸다. 입주를 앞두고도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수분양자들이 잔금 부담에 직면했고, 스트레스 DSR 규제까지 본격 시행되면서 입주시장 혼란은 더욱 가중되는 모습이다. 수도권 곳곳에서 잔금 미납 우려와 전셋값 조정 움직임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입주 코앞인데 세입자 찾기 난항
1일 업계에 따르면 입주를 앞두고 세입자를 찾지 못한 수도권 아파트 단지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발표된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 조치로 소유권 이전 전에는 세입자의 전세보증금 대출이 불가능해지면서 전세계약이 무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기존에는 세입자가 대출로 보증금을 마련하고 수분양자가 이 자금으로 잔금을 납부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이 구조가 막히며 입주가 임박한 단지일수록 자금 부담이 커지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7월 한 달간 수도권에서 입주 예정인 아파트는 총 1만1863가구다. 이 가운데 서울이 9개 단지 4157가구, 경기도는 10개 단지 6257가구, 인천은 4개 단지 1449가구다. 신축 입주 물량이 많은 만큼 전세 수요와의 간극이 커지면 시장 혼선도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지역별 중개업소에는 “세입자를 빨리 구할 수 없느냐”는 수분양자들의 문의가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주말 사이 일부 수분양자들 사이에선 지인 명의를 빌리려는 불법적 시도나 웃돈을 제시하며 임차인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감지됐다. 서울 도봉구의 중개업소 관계자는 “계약금도 포기하고, 오히려 계약만 성사되면 500만원을 얹어주겠다는 수분양자도 있었다”며 “전세가 잘 안 나가다 보니 다들 급해진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편 전세보증금으로 잔금을 마련하려는 수분양자들 중에는 처음으로 내 집을 장만한 실수요자도 적지 않다. 이들까지 피해를 입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제도적 보완을 통해 전월세시장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지해 부동산114 리서치랩장은 “이번 조치로 입주 자금을 전세보증금에 의존해온 실수요자들이 예상치 못한 타격을 받고 있다”며 “갭투자 억제라는 규제 취지는 살리되, 실거주 수요가 위축되지 않도록 전세 의존 구조에 대한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남 고가단지, 반전세도 안 먹혀
이런 가운데 올 하반기 입주하는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중심의 고가 단지는 더욱 비상이 걸린 양상이다. 애초에 전세 가격이 높아 대출 없이 들어올 세입자를 찾기 어려운 데다, 타 지역 아파트와 달리 '반전세(보증부 월세)'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다.
입주를 앞둔 한 단지의 소유주 A씨는 “올 현금 세입자가 안 구해지면 그나마 반전세로 돌려서 나오는 보증금에 나머지를 현금으로 만들어 잔금을 내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다”면서 “더 고가 아파트는 반전세도 안 될 텐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싶다”고 말했다.
반전세는 보증금이 전세보다는 낮아 이른바 ‘올(all) 현금’ 세입자를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할 수 있다. 또 월세보다는 높은 보증금을 받을 수 있는 데다 매달 월세가 들어와 잔금 부담이 줄어든다.
하지만 고가 주택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부터 반전세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지난해 12월 30일부터 ‘고액 반전세’ 계약 시 전세금 반환 보증 보험에 가입할 수 없도록 했다. ‘전월세 전환율 6%’를 적용해 수도권에서 7억원의 전세 보증금을 초과할 경우 HUG 보증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한국주택금융공사(HF)도 전월세 전환율을 고려해 전세대출보증을 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꾼 바 있다.
정부는 이번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 대책이 전세 가격 하락을 유도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전세값을 과도하게 올리면 그만큼 현금을 가진 사람이 없겠지만, 합리적으로 조정한다면 입주하려고 하는 사람은 충분히 있을 것”이라며 “전세값이 자연스럽게 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강남3구에서는 서초구 메이플자이(3307가구)가 전날 입주를 시작해 이번 대출규제의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서초구 래미안원페를라(11월), 강남구 청담르엘(11월), 송파구 잠실래미안아이파크(12월) 등의 대단지들도 입주를 앞두고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집주인들이 현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으려 노력 중이겠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급매로 매물을 내놓는 이들도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en1302@fnnews.com 장인서 전민경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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