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현지시간) 태국 방콩 시청 광장에서 열린 '오징어 게임 3' 홍보 행사에서 시민들이 줄넘기 게임을 하고 있다. 뉴스1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시즌3 팝업을 찾은 시민들이 드라마 조형물을 관람하고 있다. 뉴스1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서울광장까지 '오징어 게임 시즌3 글로벌 피날레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있다. 뉴스1
[파이낸셜뉴스]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은 과도한 경쟁이 일상화된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에 대한 사회성 드라마면서 그 어떤 극한의 순간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은 한 남자의 이야기다. 456억원이 사람의 목숨값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데스 게임에 참가한 성기훈의 서사가 시즌3를 통해 마침내 완성됐다.
넷플릭스 역대 흥행작의 인기에 걸맞게 성기훈이 다시 게임에 참가해 또 이기는 해피엔딩 결말이었다면 어땠을까. 그게 더 안전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황 감독은 '오징어게임' 전후 완전히 달라진 성기훈의 성장 서사를 고집스럽게 완성시키며, 이 시리즈를 통해 하고 싶었던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집중했다.
주인공 기훈을 연기한 이정재는 이런 황 감독의 대본에 대해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평했다. 그는 "이런 엔딩은 상상하지 못했다"며 "다 읽고 나서 '작가주의적인 모습이 강하구나, 비즈니스 적인 관점보다 작품에 대한 애정이 더 크구나'를 크게 느꼈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개인적으론 시즌3를 가장 좋아한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다음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황동혁 감독과의 일문일답.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시즌3의 결말이 꽤 파격적이다. 원래부터 이런 끝을 생각한 건 아니라고.
▲원래는 기훈이 다시 게임에서 이기고 시즌1의 마지막처럼 딸을 만나러 미국에 가는 해피엔딩을 생각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시즌2와 3를 구상하고, '내가 이 작품을 통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뭘까'를 깊이 고민하다 보니, 그렇게 희망적으로 끝낼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경제 불황, 기후 위기, 정치 혼란, 전쟁까지… 그 안에서 젊은 세대들이 희망을 잃어가는 게 뚜렷히 보였다. 기훈이 게임에 이긴 뒤 딸을 보러 가는 결말은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지금처럼, 기훈이 기성세대의 한 인물로서 다음 세대에게 좀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선 뭔가 희생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
―시즌3에서는 기훈과 함께 아기의 존재가 중요하다. 애초 아기 출산 장면을 염두에 두고 임산부 캐릭터를 설정한 건가?
▲그렇다. 반란에 실패하고 대호(강하늘)까지 죽인 기훈에게 마지막으로 의미 있는 무언가를 줘야했다. ‘아이’는 지켜야 할 미래이자 상징적인 존재다. ‘오징어 게임3’는 일종의 우화지만 우화로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출산이라는 현실적인 장면이 필요했다. 그래서 출산할 것 같지 않은 얼굴을 가진 강한 눈빛의 배우 조유리를 캐스팅했다.
―기훈이 마지막에 "우리는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 사람은…"이라며 대사를 다 채우지 않고 빈칸으로 뒀는데...
▲사실 처음엔 뒷말을 고민했다. 근데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가 한두 마디로 정의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어떨 때는 너무너무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흉폭한데 어떨 때는어떻게 이러나 싶을 정도로 이타적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의가 아니라 사람은 이래야 한다는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기훈이 스스로 몸을 던져서 행동으로 그 빈칸을 채우고 싶었다. 기득권층이 자신들이 가진 것들을 좀 내려놓고 욕망의 수레바퀴를 잠시 멈추고 미래 세대에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 뭔가를 희생해야 될 때가 오지 않았나 싶었다.
―마지막 게임 장소가 건설 현장이다. 안전제일이라는 안내판도 눈에 띈다.
▲마지막 게임을 하러 가기 전, 텅 빈 숙소 벽에 라틴어로 적힌 "오늘은 나지만 내일은 너다"라는 문장을 카메라가 살짝 잡는다. (이어 공중에서 오징어 게임이 펼쳐진다) 공사장 기둥들이 다 낡은 상태인데 그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시스템 같았다. 언뜻 견고해 보이지만 실제론 무너져가고 있는. 그 안에서 계속 약자를 죽이는 경쟁을 하고 있는데, 그걸 멈추고 공생을 고민해야 하지 않나, 그래야 오늘은 내가 죽지만 다음은 너도 죽을 수 있다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 ‘안전제일’ 표지판은 일부러 넣었다. 공사장에서도 안전제일을 외치나 실상 그렇지 않고, 우리사회도 약자를 위한 안전망을 만들자고 하지만 성장 제일, 소비 제일주의 세상이잖나.
―엄마가 아들을 찌르는 행동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엄밀히 말하면, 그건 죽이려고 한 게 아니다. 살인을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래서 칼을 든 팔 뒤를 찌르는 방식으로 연출했다. 결과적으로 그게 아들의 탈락과 죽음으로 이어졌고, 그 죄책감에 극단적 선택까지 가지만, 의도 자체는 ‘내 아들 죽여야지’가 아니었다. 한편으론 ‘아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엄마’는 너무 너무 뻔한 이야기고 다들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그래서 의외의 선택으로 어떤 기존의 틀을 흔들고 싶었다. (내 아이를 위해서만 작동하는 모성이 아니라 더 큰 모성을 발휘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나?)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오징어 게임' 속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분)
'오징어 게임3' 속 이명기(임시완 분) 모습
―시즌1의 새벽(정호연)이 환영처럼 나타나서 기훈을 막는 장면이 의미심장한데.
▲그건 시즌1에서도 똑같이 나온 장면이다. 마지막 게임에서 상우를 죽이려는 기훈을 새벽이 “아저씨, 그러지 마. 아저씨 그런 사람 아니잖아”라며 저지한다. 그 대사는 내게 아주 중요했다. 극한의 상황에 몰려서 인간성을 잃으려는 기훈을 붙들어 세우는 한마디였다. 그래서 시즌3에서도 그 장면을 환상처럼 반복했다.
―프런트맨의 동생이자 형사인 준호(위하준)의 활약이 너무 적은 건 아쉽다.
▲원래는 준호 팀이 기훈을 구출하러 오는 설정이었는데, 섬에 늦게 도착하게 되면서 활약상이 기대에 못미치게 됐다. 그래도 섬에 꼭 도착하게 하고 싶었다. 준호가 게임이 벌어진 그 현장을 다시 목격하고, 또 형제의 대면도 넣고 싶었다. 사실 프론트맨이 아이를 키울수 없기 때문에 아이를 맡길 사람도 필요했다. 나중에 혹시나 스핀오프가 나오면 준호를 더 잘 살려보겠다.
―기훈의 죽음이 프론트맨에게 변화를 일으켰다고 보는데...
▲그렇다. 시즌2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인간에 대한 믿음'이었고, 기훈과 프론트맨의 대결은 그 믿음을 둘러싼 충돌이라고 할수 있다. 프론트맨이 기훈을 죽이지 않고 다시 게임장에 집어넣은 것도, 뒤에서 그를 조종한 것도, 모두 그 신념의 충돌을 끝까지 밀고 가기 위한 선택이었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프론트맨은 기훈에게 칼을 쥐어주며 최후의 테스트를 했고, 기훈이 그것을 거부하는 순간 어느 정도 자신의 패배를 직감했을 것이다. 기훈이 희생을 택하는 장면에서, 프론트맨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것으로 그 감정을 드러낸다. 그가 기훈의 딸에게 피 묻은 옷을 전달하는 것은 프런트맨 식의 리스펙트(respect)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딱지녀를 다시 만나는 설정은 애초부터 구상한건가?
▲그렇다. 기훈이 게임에서 이기고 끝나는 해피엔딩 설정에서도 그 장면은 존재했다.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이병헌 배우에게도 약간 놀란 듯한 표정으로 연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미국판 딱지남은 한국과 달리 여자로 설정하고 싶었다. 대사도 한마디밖에 없어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고 바로 케이트 블란쳇이 떠올랐다. 고맙게도 흔쾌히 수락해줬다. 나중에 보니 아이들이 ‘오징어 게임’을 너무 좋아했다더라. 그래서 애들한테는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임시완이 연기한 ‘명기’ 캐릭터는 어떤 인물로 그리고 싶었나?
▲명기는 우리가 현실에서 충분히 마주할 수 있는, 아주 인간적인 악의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다. 100억 빚진 인물이나 남규 (노재원)같은 캐릭터는 전형적인 악의 상징이지만, 명기는 처음부터 악하지는 않았다. 준희와 아이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순간순간 이기적인 선택들이 그를 점점 수렁으로 빠뜨렸다.
욕망과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우리는 늘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명기는 그런 현실 속에서 조금씩 무너져가는 사람을 대변한다. 특히 네 번째 게임에서, 남규의 말에 넘어가지 않고 준희를 찾으러 갔으면 일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결국 명기는 극단적인 상황 끝에, 사람도 믿지 못하고, 아이까지 부정하게 되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시즌3까지 모두 공개된 지금, 소감은?
▲시즌1이 기대이상의 폭발적 반응을 얻었고 그 반응도 참 다양했다. 어떤 분들은 게임 자체를 좋아했고, 또 어떤 분들은 사회적 메시지에 주목했으며, 캐릭터를 사랑하는 분들도 많았다. 시즌2와 3를 만들며 깨달은 건, 이 작품은 제 것이 아니라 팬들의 것이구나. 그리고 팬덤이 생긴 시리즈를 오래 끌고 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했다. 작품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고, 팬들마다 ‘자기만의 오징어 게임’을 갖고 계시더라.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내놔도, 누군가는 메시지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누군가는 게임이 덜 흥미롭다고 하고, 누군가는 왜 내 캐릭터를 빨리 죽였냐고 아쉬워한다. 원래 이 작품은 굉장히 소수 취향의 극단적인 이야기였는데, 이렇게까지 큰 사랑을 받았다는 게 아직도 놀랍다. 호불호와 논쟁조차도 감사하다. 뜨거운 논의가 벌어지는 것도, 한편으론 참 행복한 일이다.
'오징어 게임' 황동혁
그는 시즌3 공개 다음날인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시리즈의 모든 배우가 한자리에 모여 마무리할 기회를 갖게 된 일을 언급하며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많이 모이신 시민 여러분들을 보면서 진짜 뭉클한 마음이 들어서 무대에서 살짝 울컥한 걸 누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황 감독은 또 지난 6년간 이어진 시리즈가 완결된 것에 대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어서 홀가분하고 시원하다"며 "너무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아서 또 언제 이런 사랑을 받겠냐 싶어 섭섭하기도 하다.
양가적 감정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또 "개인적으로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있다"며 "이빨을 10개나 잃었다"고 부연했다. 그는 몸무게가 한때 59kg까지 빠졌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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