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추상화 거장 4인 '네모:Nemo'展… 내달 9일까지 리만머핀 서울
'4인 4색'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
윤형근 '존재감' 정상화 '물리적 저항'
휘트니 '재즈 감성' 비니언 '자아' 담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열리는 리만머핀 서울의 '네모: Nemo'전 리만머핀 서울 제공
"추상은 비어 있지 않다. 그 안에는 개인의 서사와 시대의 상흔이 축적돼 있다."
미국과 한국의 추상 회화 거장들이 '네모'라는 단순한 도형 안에서 만났다. '네모'는 라틴어로 '아무것도 아닌 자'를 뜻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 채울 수 있는 공간도 된다.
이들이 채워가는 '네모'는 서로 다른 문화권과 시대적 배경을 지녔지만 공통적으로 형식에 대한 치열한 고민, 정체성에 대한 질문, 사회적 기억에 대한 성찰이 스며있다.
한국 기획자 엄태근 큐레이터와 손잡고 공동 기획한 윤형근·정상화·맥아서 비니언·스탠리 휘트니 작가의 기획전 '네모: Nemo'전(展)이 다음달 9일까지 서울 용산구 이태원 리만머핀 서울에서 열린다.
엄 큐레이터는 뉴욕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평론가로, 동시대 추상회화의 언어를 한국적 맥락 속에서 새롭게 번역해내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전시는 그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형식 너머의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리만머핀이라는 글로벌 갤러리와 함께 구현한 대형 프로젝트다.
그는 네 작가의 공통점으로 △형식에 대한 치열한 사유 △정체성과 시대에 대한 성찰 △감정의 물성을 추상 언어로 변환해낸 점을 꼽았다. 단순히 사각형을 반복하는 작업처럼 보일 수 있지만 각각의 '네모'는 한 사람의 삶, 하나의 시대, 하나의 공동체를 담고 있는 것이다.
윤형근 'Blue Umber' 리만머핀 서울 제공
우선 윤형근 작가는 고통과 침묵의 시대를 거쳐온 한국 현대사의 정신적 초상으로 푸른색과 갈색을 반복해 발라 '하늘과 땅의 문'을 그렸다. 색은 그에게 상징이자 묵언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Blue Umber(1978)'는 린넨에 유채이며 화면 중앙을 기준으로 양옆에 수직의 띠가 한 쌍이 배치돼 있다. 주된 색조는 암갈색과 청색으로 이 띠들은 부드럽게 번지며 화면 가장자리로 퍼져 나간다. 전체 화면을 지배하는 분위기는 침묵과 여백이며 수직 띠는 기둥이나 문을 연상시키는 단순한 구조 속에서도 강한 상징성과 존재감을 드러낸다.
정상화 작가는 '벗기고 칠하는' 단색화의 물성 실험을 통해 추상이 갖는 물리적 저항을 보여준다. 사각형은 그에게 노동이자 수행이었다. 특히 '무제 855-6(1985)'은 화면 전체를 짙은 청색 톤으로 채우고 있다. 작가는 캔버스를 접고 균열을 낸 뒤 그 틈을 파란색으로 반복해 메우는 방식으로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완성했다.
스탠리 휘트니 'Untitled' 리만머핀 서울 제공
스탠리 휘트니 작가는 재즈의 즉흥성과 색의 리듬을 격자 구조 안에 담아낸다. 단순해 보이는 구조 속에서 폭발하는 감각은 도시의 리듬, 혹은 인종적 삶의 진폭과 닮아 있다. 이번 전시작 'Untitled(2020-21)'는 그의 대표적인 방식인 화려한 직사각형 '블록' 그리드 구성으로 노랑, 연두, 주황, 분홍 등 다채로운 색조로 채워져 있다. 붓질은 풍부하면서도 절제돼 있으며, 각각의 색면은 선명하지만 동시에 물감의 흘러내림으로 그리드의 '침범'을 볼 수 있다.
구조 안에서는 일종의 리듬감을 유지하고, 경계선은 종종 부드럽게 처리되거나 미묘하게 겹쳐 색면 간의 흥미로운 상호 작용을 만들어낸다.
맥아서 비니언 작가는 콜라주, 드로잉, 페인팅을 결합해 사적 문서와 사진 위에 격자무늬 그리드를 중첩시키는 자전적 추상 작업을 선보인다. 출생증명서, 주소록, 전화번호부, 유년 시절의 그림 등 그의 개인사가 담긴 재료들은 오일 스틱으로 그린 격자 위에서 은폐되고 추상화된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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