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19세기 초 프로이센의 군사 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저서 '전쟁론'에서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延長)'"이라는 의미심장한 경구(警句)를 남겼다. 한번쯤 들어봤을 만한 이 문구는 그 해석을 두고 지금까지도 다양한 오해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흔히 이를 정치인이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전쟁을 일종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상황에 빗대어 해석하는 경우가 있으나, 클라우제비츠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오해다. 영국의 전쟁사학자 존 키건은 1993년 저서 '전쟁의 역사'에서 클라우제비츠가 이 문장을 통해 전쟁을 국가의 정당한 정책도구로 합리화했다는 비판을 가해 논쟁을 촉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클라우제비츠가 이 경구를 통해 진정으로 강조하고자 했던 바는 전쟁은 정치와 분리된 자율적 행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국의 정치적 목표, 즉 정책목표에 의해 기획되고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쟁이 단순한 군사적 충돌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뜻이고, 전쟁은 군사적인 이유가 아니라 뚜렷한 정책 목적을 위해 수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가의 정책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외교적·군사적 수단을 상황에 맞게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때로는 군사력, 나아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국가지도자는 정치적 목표와 군사적 수단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명확히 이해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군사력을 사용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국가의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국가지도자가 정책 목적과 군사적 수단의 상호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전쟁을 시작하게 되면, 군사적으로는 승리를 거두더라도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패배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 2003년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은 개전 후 불과 3주 만에 바그다드를 함락시키고 후세인 정권을 몰아내는 혁혁한 군사적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전쟁은 '이라크 안정화와 민주화'라는 궁극적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근 9년간 지속되었다. 애초부터 이라크 안정화와 민주화는 군사적 수단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정책목표였다.
지난 6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시설에 벙커버스터 공습을 감행했을 때, 그 배경에는 복합적인 정치·외교적인 목적이 얽혀 있었을 것이다. 미군의 압도적 군사력을 과시함으로써 여전히 미국이 군사 패권을 장악하고 있음을 확인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고, 특히 중국과 러시아 등 미국 중심의 현 질서에 도전하는 세력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을 수도 있다. 또한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라는 별명처럼 "트럼프는 위협적 언사를 반복한 후 번번이 후퇴한다"는 비판을 잠재우고, 강력한 리더십을 과시하려는 의도도 작용했을 것이다. 여기에 이스라엘-이란 간 전쟁을 종결시키고 자신을 '피스메이커'로 포장하려는 의도까지 더해졌다면, 트럼프는 다양한 목표 달성을 노린 셈이다. 이러한 복합적 목적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는 평도 적지 않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내세운 정책목표는 명확했다. 이란의 핵심 핵 인프라와 농축물질을 직접 타격해 핵 능력을 현저히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핵 문제 자체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백악관의 설명대로 이번 공습으로 이란의 핵 능력이 상당한 타격을 입었을 가능성도 크다. 그럼에도 군사적 수단만으로는 이란 핵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다. 테헤란 점령을 통해 현 체제를 전복하고 친미 정권을 세우지 않는 한, 군사적 수단은 핵 개발 동력을 일시적으로 저지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란 핵 문제 해결이라는 정책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외교적 해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벙커버스터 공습은 목적 달성을 위한 '필요조건'이 될 수는 있으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트럼프의 벙커버스터 도박은 일견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진정한 시험대는 외교 무대가 될 것이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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