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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학배의 바다이야기] 운하와 해협을 장악하라

수출입 물량 85% 바다로
운하와 해협 주도권 위해
美中 등 강대국 물밑경쟁

[윤학배의 바다이야기] 운하와 해협을 장악하라
윤학배 전 해양수산부 차관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대상의 하나가 바로 운하다. 운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치자들의 관심 대상이었다. 현재 세계 수출입 물량의 85%가 바다를 통하기에 해운을 무역의 동맥이라 부른다. 특히 섬나라나 마찬가지인 우리의 경우 99.7%가 선박으로 운송된다.

바다를 잇는 대표적인 운하는 수에즈와 파나마 운하다. 수에즈운하는 프랑스가 시작했으나 1869년 영국이 완공하여 운영하다가 1956년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가 국유화하였다. 수에즈운하는 165㎞ 길이에 폭 200m로 연간 2만척의 배가 이용하는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대동맥으로 수에즈의 마비는 곧 세계물류의 마비를 뜻한다. 세계 물동량의 12%가 수에즈운하를 경유하는데 이곳을 이용하지 못하면 아프리카의 남단 희망봉을 돌아가야 한다. 거리로는 약 1만㎞, 시간으로 1~2주가 추가 소요된다.

수에즈운하와 쌍벽을 이루는 것이 파나마운하다. 파나마운하도 1880년 프랑스가 추진했으나 1914년 미국이 완공, 운영하다가 1999년 파나마에 넘겨주었다. 당시 파나마지역을 지배하던 콜롬비아가 운하 건설을 반대하자 미국이 파나마를 독립시켜 건설할 정도였다. 지금도 파나마는 화폐로 미국달러를 쓰는 등 중남미의 대표적인 친미 국가다. 파나마운하는 바다보다 수십m 높은 내륙 호수를 통과하기에 해수면과 호수의 고도차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갑문(dock)들을 설치하여 배를 올리고 내린다. 80㎞의 파나마운하는 남미 마젤란해협을 통과할 때보다 2만5000㎞를 단축하기에 그 역할이 절대적이다. 특히 연간 이용 선박 1만5000척 중 미국 화물이 70%여서 미국 이익과 직결되어 있다. 트럼프가 욕심을 내는 이유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파나마와 수에즈 운하 모두 프랑스가 계획하였으나 완공은 프랑스 몫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나라도 프랑스 영향권 아래 두었다면 세계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국제 해상항로에서 운하와 버금가는 곳이 해협이다. 특히 최근 이란 사태와 맞물려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 바로 호르무즈해협이다. 폭은 33㎞에 불과하지만 세계 석유의 20%, LNG의 25%가 통과하여 동남아 말래카해협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해협이다. 중동에서 수입하는 우리나라 석유는 99%가 이곳을 통과하기에 이곳의 봉쇄는 우리 경제에 치명적이다. 이처럼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을 숨통 또는 급소라는 의미로 '초크 포인트(choke point)'라 부른다. 그러기에 역사적으로 이 지역들을 장악하기 위해 강대국들이 각축전을 벌여왔고 지금도 치열한 물밑 경쟁이 진행 중이다.

패권국 미국은 군사적으로 항공모함을 통한 해양에서의 힘의 우위 전략을 견지하고 있는데 이는 대영제국 시절 영국과 같다. 선박은 유엔해양법에서 움직이는 영토로 인정되고 공해상 항행 자유와 영해 내 무해통항권(innocent passage)이 부여된다. 세계에서 이러한 권리를 향유하는 나라가 해양 패권국 미국으로 제해권(制海權)은 세계 경영을 위한 핵심 자산이자 중추 전략이다.

이러한 미국 중심의 해양질서에 제동을 걸고 변화를 꾀하는 국가가 중국으로, 잘 알려진 '진주목걸이 전략'이나 해상 실크로드 구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구단선(九段線)을 주장하고 말래카해협을 대신할 태국의 크라운하와 파나마운하를 대체할 니카라과운하를 추진하고 있다. 운하와 해협을 누가 주도하느냐가 해운은 물론 세계 경제와 군사 질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유사시 이용할 수 있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경우를 생각해 보면 과거 영국과 프랑스, 또 현재 미국과 중국이 왜 운하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된다.
미국이 바다를 보는 시각 이면엔 여지없이 중국이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운하와 해협을 장악한 국가가 세계를 주도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시 도래하고 있는 운하와 해협의 시대를 보며 우리 한반도의 해양 질서를 되돌아보게 된다.

윤학배 전 해양수산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