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의약품 등에 대해 품목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언론에 밝혔다.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등의 품목관세에 더하여 우리나라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에도 고율의 관세가 적용될 경우 우리 수출이 받는 타격이 더 커질 전망이다. 어쩌면 전체 수출에 적용되는 상호관세보다 품목관세의 충격이 더 클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수출이 소수 품목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품목집중화 문제는 그동안 한국 수출의 중요한 구조적 약점으로 여겨져 왔다. 우리나라 10대 수출품의 비중은 2024년 기준 53.3%로서 이는 주요국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20~30%이고 자동차의 수출집중도가 높은 편인 일본의 경우에도 44% 정도이다. 세계 수출시장에서 과점적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상품 수를 파악해 보아도 우리나라의 품목집중도 문제가 드러난다. 2024년 기준 세계 수출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품목의 수가 우리나라의 경우 13개로 파악된다. 반면 미국은 134개, 일본은 34개, 그리고 중국은 무려 760개가 넘는다. 저가 범용 품목에서 중국의 높은 지배력을 감안하더라도 이 숫자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그로 인해 중국의 10대 수출품 비중은 2024년 27.4%로 우리나라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다.
집중도의 추세도 문제이다. 집중도를 측정할 때 사용하는 허핀달-허쉬만지수(HHI)를 사용하여 지난 20년간의 수출집중도를 추적해 보면 꾸준히 집중도가 높아져 온 것을 알 수 있다. HHI 기준으로 1995년 대비 2024년은 26% 이상 집중도가 증가한 상황이다. 그간 수출품목 다각화 노력이 무색해지는 결과이다. 성장에 대한 기여도가 높은 수출에서 오랫동안 소수 품목에 의존해 왔다는 것은 한국경제가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상품과 이를 생산하는 기업을 새롭게 배출하지 못했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결국 기업생태계의 역동성이 저하 또는 정체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바람직한 기업생태계란 글로벌 대기업을 지속적으로 배출할 수 있는 생태계이다. 세계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내는 대기업이 많아져야 수출집중도도 완화할 수 있고 요즘과 같은 통상 갈등 시대에 리스크도 완화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 기업생태계는 이 같은 역할을 현재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경제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상당히 낮은 편이고 대기업의 일자리 비중도 작음과 동시에 정체되어 있는 상황이다.
흔히 기업생태계를 논할 때 중소기업의 성장을 주요 어젠다로 삼을 때가 많다. 물론 중소기업의 성장이 중요하지만 결국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을 거쳐 대기업으로 성장해야 제대로 된 성장사다리가 구축되는 것이며 이를 가능케 하는 기업생태계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순간 많은 새로운 규제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 따르면 기업이 성장할수록 규모 차별적 규제도 증가하며 2023년 기준 대기업에 대한 차별규제는 총 61개 법률에 342개가 존재하며 규제 수도 꾸준히 증가해 온 것으로 파악되었다. 기업의 성장을 위해 다양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성장에 대한 페널티도 가하는 '이율배반적' 기업생태계인 셈이다. 이런 제도적 환경 아래서 글로벌 대기업의 배출이 꾸준히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규제는 기업생태계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다. 기업의 잘못된 행태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규모를 기준으로 규제한다면 성장에 역행적인 인센티브를 부과하는 것이 된다. 성장 지향적 기업생태계가 조성되어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많이 배출할 수 있으며 높은 수출집중도를 완화하여 수출구조의 취약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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