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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공공기술 산업화 잘 하려면

[기고] 공공기술 산업화 잘 하려면
이지훈 한국기술지주회사협회 사무총장

기술은 더 이상 연구실 안에 머물 수 없다. 인공지능, 반도체, 에너지, 탄소중립 등 국가전략 기술을 둘러싼 글로벌 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은 정부 연구개발(R&D) 투자를 넘어 공공기술의 민간이전, 창업, 해외진출까지 아우르는 기술사업화 체계를 국가 전략으로 정립하고 있다. 단순한 연구성과 축적을 넘어 공공기술이 실질적 경제성과와 산업적 파급력을 가져오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국가경쟁력 확보의 핵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기술사업화에 대한 정책적 시도를 지속하고 있으나, 공공기술의 창업·투자·시장진입으로 이어지는 전주기 체계는 여전히 미흡하다. 공공영역에서 수행한 연구개발 성과는 쌓여가지만 대부분 기술이전 또는 시범사업 단계에 머물고 있으며 실제 사업화나 수익 창출,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 같은 공백은 결국 국가 기술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전력, 에너지, 기후기술 등 고위험 분야에서는 민간의 초기 진입이 어렵고 기술 리스크도 크다. 과거에는 이러한 전력·에너지를 담당하는 공기업의 역할이 기술개발이나 설비운영에 국한되어 있었지만, 앞으로는 공기업이 기술 실증과 사업화를 선도하고 민간이 이를 기반으로 혁신을 이어가는 구조가 필요하다. 기술개발 역량과 공공성, 자본력을 함께 보유한 공기업이 기술사업화 생태계의 핵심 주체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이러한 구조적 전환의 해법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공공첨단기술지주회사'다. 대학 및 공공연구기관에서 운용 중인 기술지주회사 모델을 공기업에 적용할 경우 기술이전 단계에 머물렀던 공공기술을 실제 기업 설립과 시장진출로 연결할 수 있다. 기존 자회사나 출자회사와 달리 기술지주회사는 기술 중심의 창업, 스핀오프, 투자유치 등을 촉진하는 기술혁신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기술지주회사는 단순히 하나의 기업을 세우는 도구가 아니라 공공기술의 산업화, 창업, 수출을 연결하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공기업이 보유한 기술과 인프라를 민간과 공유하며,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 특히 기술 확산이 어려운 지역 기반 공기업이 기술지주회사를 통해 지역혁신 거점으로 탈바꿈하는 것도 가능하다. 나아가 기술지주회사는 기업 간 협업 네트워크의 허브로 기능하며, 민간과의 동반성장을 촉진하는 매개체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해외 주요국의 사례는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국립연구소의 기술을 민간이 사업화할 수 있도록 기술지주회사와 연계해 지분투자, 실증펀드 조성, 공동사업화를 추진 중이다. 일본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도 민간 기술지주회사와 연계한 실증기술 사업화와 창업펀드를 통해 시장진입을 촉진하고 있다. 유럽의 일부 국가는 공공 연구개발(R&D) 투자의 3~5년 내 사업화 비율을 주요 정책 성과지표로 삼고 있을 정도다.

우리 정부도 기술사업화를 국가전략으로 격상하고, 공기업 기술지주회사 설립을 위한 정책 로드맵을 조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관련 법·제도의 정비, 설립 인가 기준 마련, 기술지주 초기자본 조성 및 실증펀드 조성 등 실행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전력, 에너지, 기후기술, 인공지능 등 국가 전략기술을 다루는 공기업의 경우 기술의 확보와 활용이 곧 국가경쟁력으로 직결되는 만큼 한국전력공사 등과 같은 대형 공기업이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해 국가 전략기술 분야의 실증과 창업을 견인한다면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 산업계의 경쟁력은 한층 강화될 수 있다.


기술은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화'되어야 한다. 공공첨단기술지주회사는 그 전환의 출발점이며, 기술의 가치를 시장에서 실현하는 플랫폼이다. 이제는 공공기술의 산업화와 수출을 위한 전략적 실행이 필요한 때다.

이지훈 한국기술지주회사협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