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서 점수 얻는 것보다
어떤 무용수 될까 더 중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것
김지영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얼마 전 콩쿠르 시상식에서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무용수 훌리오 보카(Julio Bocca)가 학생들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는 처음 출전한 콩쿠르에서 아무 상도 받지 못한 채 낙심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당시의 좌절은 깊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연습을 이어갔고, 7개월 뒤 또 다른 콩쿠르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경희대학교 무용학부 학생들 또한 매년 다양한 콩쿠르 무대에 오른다. 누군가는 상을 받고 환한 얼굴로 돌아오고, 누군가는 기대에 못 미친 결과에 마음이 무거운 채 돌아온다. 하지만 결과와 무관하게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시간과 노력은 결국 그들의 몸속 깊이 새겨지고, 훗날 고유한 춤이 되어 되살아난다. 문득 그들의 얼굴에서 오래전 나를 떠올리게 된다. 나 또한 그런 시절을 지나왔다. 처음 국제 콩쿠르에서 상을 받았을 때, 마치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듯 느꼈다. 꿈이 현실이 되고, 긴 노력을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그 자리가 발레 인생의 마침표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 순간은 끝이 아니라 겨우 '시작'이었다. 콩쿠르는 무용수에게 분명 소중한 '기회'다.
그러나 그 기회는 '부담'이라는 짐도 함께 지고 온다. 어떤 이는 단 한 번의 수상으로 삶의 방향이 바뀌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스스로의 춤을 의심하며 흔들리기도 한다. 내가 추는 춤이 충분한지, 이 길을 계속 걸어도 될지 조용히 되묻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요즘 콩쿠르 심사를 많이 하게 되면서 느끼는 건, 춤들이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용수들은 익숙한 작품과 정해진 안무, 비슷한 표정 속에 갇히는 경우가 많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은 무대를 안전한 선택으로 이끌고, 기술은 뛰어나지만 그 사람만의 감성과 해석은 흐려질 수 있다. 그럴 때 나는 무용수들이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졌으면 한다. "나는 왜 이 춤을 추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은 결코 쉽게 답할 수 없지만, 무용수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음이다.
무대에 서기까지 흘린 땀과 떨림을 '등수'라는 숫자로 설명할 수는 없다. 콩쿠르는 춤뿐 아니라 마음까지 시험대에 올려놓는다. 기술과 표현력, 음악성, 무대 위 태도까지 수치로 평가되지만, 가끔은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기도 한다.
무대에서 점수를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무용수가 되고 싶은지 깊이 고민하는 일이다. 춤은 시간 속에 흐르는 예술이라, 그 순간의 진심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상을 받든 그렇지 않든, 다시 바를 잡고 연습실로 돌아가는 학생들을 보면 나는 그들 안에 진짜 무용수가 자라나고 있음을 느낀다.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발끝을 세우는 반복이야말로 무대 위에서 오래 춤추게 하는 진짜 힘이다.
콩쿠르의 결과에 따라 춤을 계속 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지금도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등수가 말해주지 못하는 진심, 그것이 무용수의 길을 조금씩 단단하게 만든다.
우리가 춤을 계속 추는 이유는 누군가의 점수가 아니라, 내 안 깊은 곳에 자리한 작고 확고한 열망이다. 그 마음이 있는 한, 무대는 언제든 우리 앞에 다시 열릴 것이다. 누군가는 빠르게 결과를 내고 앞서가는 듯 보일 수도 있지만, 발레는 긴 여정이다.
단단한 마음을 가진 이가 결국 끝까지 살아남고, 그 마음은 언젠가 관객에게 전해져 또 다른 마음을 움직인다. 무대 위에서 춤이 누군가에게 용기와 위로가 되는 순간을 나는 진심으로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춤을 춘다. 숫자가 말해주지 못하는 따뜻한 가치를 믿으며.
김지영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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