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크리스틴 로젠은 '경험의 멸종'에서 가상경험이 실제경험을 대체한다며 강력하게 비판한다. 사실 SNS의 '좋아요'가 인간관계를 대신하며, 여행채널이 실제 못잖은 대리체험을 이끌며, 알고리즘이 직접경험마저 미리 선별해 주는 것이 우리의 일상 아닌가. 그러나 기술발달에 따른 디지털 환경에 인간이 언제나 만족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결핍은 새로운 욕구로 이어질 수 있고, 공연은 감각을 극대화하며 사람들을 극장으로 이끈다. 공연예술에서의 현장감은 실제 삶에서 제한돼 온 감각과 정서, 감정을 풍성하게 되살린다. 특히 무대와 객석의 벽을 허물고 관객이 이동하는 관객참여형으로 만들어진 공연들은 때때로 '경험하는 공연'이라 말해지며, 일상에서 조금씩 박탈됐던 물리적인 자극 혹은 실제적 경험을 작품을 매개로 되돌려 준다. '슬립 노 모어'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지난 7월 서울 옛 대한극장을 리모델링한 매키탄 호텔에서 프리뷰를 가지며 개막한 '슬립 노 모어 서울'은 놀라운 기록을 갖고 있다. 영국 펀치드렁크의 '슬립 노 모어'는 2003년 실험적인 작품으로 시작했으며, 2007년 미국에 진출해 2011년부터 뉴욕에서 장기 상연했다. 또 2016년부터 중국 상하이에서 장기 상연을 하고 있다. '슬립 노 모어 서울'의 세 시간 남짓의 관람은 공연예술의 현장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창작진 의도에 완전히 사로잡히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각색한 공연은 근거리에서의 무용수들이자 배우들이 뿜어대는 에너지와 풍성한 음향, 조명, 소름끼치도록 디테일한 무대미술 안에서 새로운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왜 인간은 늘 균형을 잃고 잔인함과 파괴 속으로 불나방처럼 몸을 던지는 것일까, 가속도 있게 달리는 방향 잃은 폭력을 공연은 만져질 듯 구현해 낸다. 그만큼 감각적 체험을 이끄는 극적 장치들이 극대화돼 있다.
공연은 자극적 요소들이 극대화돼 있지만, 채널을 키우듯 무작정 확장시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리하고 섬세하게 파고든 자극에 의해 무뎌진 감각이 통증처럼 되살아나는 쪽이다. 그래서 원작과 현재의 호텔 공간 안에 무수한 감정이 흘러 다님을 마주하게 한다. 경험이 깊어지는 순간이다.
엄현희 연극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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