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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지역투자공사 설립을 서두르자

[포럼] 지역투자공사 설립을 서두르자
이병헌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
미국과의 관세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우리 협상 대표단의 노력으로 애초 우려했던 것보다는 유리한 조건으로 타결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협약대로 대미 투자가 진행된다면 국내 산업과 기업에 대한 투자는 그만큼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특히 남부 임해공업 지역의 조선업을 비롯한 제조업의 공동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철강, 조선, 자동화 및 화학 업종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주문이 줄어 경영난을 겪게 될 것이다.

침체일로에 있는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기업의 인공지능(AI) 전환과 신산업 진출, 한계기업의 구조조정, 로봇과 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 벤처기업의 창업과 성장 지원, 신재생에너지 생산과 송전망 구축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서둘러야 한다. 정부도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첨단 전략산업에 투자하는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중 40% 이상을 지방에 투자하기로 하였다. 또한 연간 10조원 내외인 벤처투자 규모를 2030년까지 40조원 규모로 확대하고, 그중 30% 이상을 비수도권에 투자할 계획이다.

문제는 이러한 대규모 지방투자를 어느 금융기관이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집행할 것이냐다. 광역자치단체별로 설립되어 있는 지방은행은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해주는 상업은행의 역할을 할 뿐이고, 지역 내 경제개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투자자를 모집하여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는 투자은행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는 대부분의 사모펀드 운용사나 벤처캐피털은 지방 각지에 산재해 있는 투자 프로젝트나 기업을 발굴하는 데 한계가 있다. 벤처기업 중 40%가 비수도권에 있으나, 벤처캐피털 투자의 8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지방의 산업 인프라 및 기업에 대한 투자를 기획하고 집행할 전문 투자기관을 육성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가운데 국정기획위는 권역별로 지역투자공사를 설립하는 것을 국정과제로 설정하였으며,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균형성장 전략의 주요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동남권과 충청권에 지역투자공사를 설립하는 법안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되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무산됨으로써 부산 민심을 달래기 위해 그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동남권 투자공사를 설립하는 꼼수를 둔다고 비판한다. 산업은행과 역할이 중복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는 일부 정부 부처의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지역의 산업과 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전문 투자은행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 필요성을 호도하는 것이다.

투자은행이 각 지방에서 적합한 투자처를 발굴하고, 투자자를 모아 투자를 집행하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의 산업과 기업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가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 지방의 산업과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지역밀착형 관계금융이기 때문이다.
이는 산업은행과 같은 국책은행이 하기 어려운 일이다. 독일은 연방정부 산하 정책금융기관인 독일부흥은행(KfW)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별로 주립투자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도 권역별로 투자은행 역할을 할 지역투자공사 설립을 서둘러야 한다.

이병헌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