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또 다시 ‘사무라이 재팬’의 집결 소식이 들려온다. 그 이름들의 무게감이 실로 엄청나다.
전 세계 스포츠 역사상 최대 규모인 7억 달러 계약의 주인공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가 2026 WBC 출전을 선언했다. 월드시리즈에서 6차전 선발, 7차전 구원 등판이라는 투혼을 발휘하며 우승을 이끈 야마모토 요시노부(LA 다저스) 역시 구단의 만류를 뿌리치고 합류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갓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 유니폼을 입은 거포 무라카미 무네타카까지 가세했다.
이 뉴스를 접하는 한국 야구팬들이 느끼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은 부러움을 일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두려움, 그리고 자괴감 비슷한 아쉬움도 함께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냉정하게 묻고 싶다. 오타니, 야마모토, 무라카미 이들에게 WBC 출전이 주는 이득이 무엇인가. 한국처럼 향후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통한 병역 혜택에 유리한 점이 있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금전적인 보상이 큰가? 이미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이들에게 WBC 우승 상금이나 수당은 동기부여가 될 수 없다.
[토론토=AP/뉴시스] LA 다저스 야마모토 요시노부가 2일(한국 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의 로저스센터에서 열린 2025 메이저리그(MLB) 포스트시즌 월드시리즈(WS·7전4선승제) 7차전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승리를 확정한 뒤 기뻐하고 있다. 2025.11.02. /사진=뉴시스
오히려 잃을 것이 훨씬 많다. 오타니는 팔꿈치 수술 후 투타 겸업을 재개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야마모토는 월드시리즈까지 치르며 어깨를 갈아 넣었다. 이들은 월드시리즈 7차전까지 쉼없는 일정을 소화했다. 그리고 곧바로 시즌에 들어가야 한다. 부상의 위험에 크게 노출된다. 무라카미는 낯선 미국 땅에 적응해야 하는 첫해다. 만약 대회에서 부상이라도 당하거나,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낸다면 쏟아질 비난은 상상을 초월한다. 거기에 2년 후 자신의 계약에도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오타니는 지난 WBC 우승 직후 팔꿈치 수술을 하기도 했다. 구단 입장에서도 수천억 원짜리 자산이 다치는 것을 원치 않아 사령탑들이 공개적으로 차출 반대 의사를 내비치기도 한다. 아니 대부분의 구단이 WBC 참가에 반대한다. 3연패를 노리는 다저스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조국을 위해서’라는 명분 하나로 기꺼이 일장기를 단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이 “개인적으로는 출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드러냈음에도, 야마모토는 “나가고 싶다”는 의지를 꺾지 않았고, 무라카미는 입단식에서부터 “마음은 흔들림이 없다”고 못 박았다. 오타니는 SNS에 “다시 일본을 대표해 뛰게 되어 행복하다”고 썼다.
우리가 일본 야구를 두려워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시속 160km를 던지는 투수들의 구속이나, 정교한 타격 기술에 있지 않다. 바로 이러한 ‘태도’다.
[마이애미=AP/뉴시스] 일본 야구대표팀 무라카미 무네타카가 21일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미국과의 경기에서 2회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고 있다. 2023.03.22 /사진=뉴시스
슈퍼스타들이 국가대표를 대하는 자세에서 일본은 이미 한국을 압도하고 있다. 한국 야구는 국제대회 때마다 엔트리 구성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부상, 시즌 준비, 개인 사정 등 각종 이유로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팬들 사이에서도 “병역 혜택이 없으니 동기부여가 떨어진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일본은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는 슈퍼스타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오직 국가의 명예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한다. 2023 WBC 우승의 영광을 뒤로하고, 그들은 2026년에도 최정예 멤버로 전력을 다할 태세다.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순수한 열망과 자부심이 그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기량 차이는 훈련으로 좁힐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가대표 유니폼을 대하는 마음가짐의 격차는 단기간에 메울 수 없다. 이미 돈과 명예를 모두 가진 ‘7억 달러의 사나이’가 가장 앞장서서 대표팀에 합류하는 나라. 갓 미국에 진출해 적응이 시급한 신입 메이저리거가 주저 없이 국가의 부름에 응답하는 나라.
2026 WBC에서 한국은 일본과 같은 조에서 만난다.
오타니와 야마모토, 무라카미가 버티는 일본 대표팀은 거대해 보인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들이 보여주는 ‘야구를 향한 진심’과 ‘국가대표의 품격’이다. 실력보다 더 뼈아픈 ‘멘탈리티’의 패배를 우리는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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