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선 지식재산처장
무시기불공(無恃其不攻). "적이 공격하지 않기를 기대하지 말고 공격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즉 아무 일이 생기지 않기를 막연히 기대해서는 안 되고, 공격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손자병법의 '구변(九變)편'에 나오는 말이다.
지식재산처의 초대 처장으로 와 보니, 특허청 시절과 확연히 달라진 게 국가 기술안보를 책임지는 '방첩기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사명이 주어졌다는 감회도 잠시, 앞으로 기술안보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한 처장으로서의 고민이 날로 깊어졌다. 그러던 중 손자병법의 이 구절이 2500여년을 관통해 유효한 깨달음을 줬다.
손자의 시대에는 국경이 접한 곳에서 격전이 이뤄졌지만, 현대는 첨단기술이 있는 곳이 곧 최전선이다. 실제로 최근 한 대기업 직원이 해외기업과 고문계약을 맺고 퇴직하면서 이차전지 분야 국가첨단전략기술을 무단 유출하려 한 시도를 지재처 기술경찰이 적발한 일이 있었다. 기술이 곧 자산이자 국력이며 미래의 성장동력이다 보니 침탈하려는 시도가 산업 현장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손자의 가르침은 분명한 해법을 제시한다. 우선, 기술유출 시도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전제로 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디가 공격의 표적이 될 수 있는지 미리 파악해야 한다. 지재처는 전 세계 기업·연구소·대학 등이 만들어낸 첨단기술정보를 6억3000만개의 특허 빅데이터로 보유하고 있다. 이를 분석하면 해외에서 노릴 만한 우리의 선도기술을 파악할 수 있다. 지재처는 이런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관계기관에 유출위험 정보를 제공, 기술방어 역량을 높이려 한다.
기업 스스로 영업비밀인 핵심기술을 지키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재처는 기술보호 역량이 부족한 중소·중견 기업을 대상으로 보안취약점을 진단하고 보호체계를 설계해주는 맞춤형 지원을 확대할 것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기업의 기술자료를 자동 분류·등급화하고 접근권한과 보관이력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산업 현장에 보급해 기업의 영업비밀 관리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고 한다.
기술도둑 근절에도 더욱 힘쓸 것이다. 지재처 기술경찰의 수사 역량을 높이는 것은 물론 일선 경찰 수사에서도 기술침해 여부를 신속히 판단할 수 있도록 기술전문성을 갖춘 1200여명에 달하는 지재처 심사·심판관이 기술감정을 제공할 방침이다. 아울러 한국형 증거개시제도 등 제도 정비로 국가 차원의 촘촘한 기술보호망을 구축해 나갈 것이다. 지난 17일 열린 지재처 업무보고에서도 국내외 기술유출에 대한 강력한 대응과 기술경찰 확대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진 바 있다.
기술안보는 단순히 기업의 자산을 지키는 수단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위한 전략적 투자다. 우리의 기술을 온전히 지킬 수 있을 때 기술강국으로서 위상을 공고히 하고, 미래 세대에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을 물려줄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이 치열한 격전의 최전방에서 '공격당하지 않을 힘'을 갖추고 종국에는 기술패권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지재처는 믿음직스러운 '깐부'가 될 것이다.
김용선 지식재산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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