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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플랫폼 규제로 '안방 시장' 헌납 말아야

국내기업의 보호를 위한 '온플법’
콘텐츠·게임 등 연관산업 위축시켜
중국 등 제3국 기업에 길 터줄 우려
'하이브리드 통상 전쟁' 시대 대비
사전규제보다 사후·자율규제 우선
플랫폼 생태계 위축시키지 말아야

[fn광장] 플랫폼 규제로 '안방 시장' 헌납 말아야
박기순 한중경제포럼 회장

작년 말 유럽연합(EU)이 계정 인증 표시와 광고 정책이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1억2000만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EU 집행위원회는 X뿐 아니라 메타, 구글, 애플 등 다른 미국 빅테크(대형 정보기술기업)도 조사하고 있다. 이는 미국과 EU 간 플랫폼 규제가 긴장관계를 넘어 본격적인 대결로 접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EU의 디지털 규제는 DSA와 디지털시장법(DMA)이라는 두 축으로 구성된다. DSA는 불법·유해 콘텐츠 관리와 알고리즘 투명성 확보 등을 통해 플랫폼의 사회적 책임과 운영 행태를 주로 사후적으로 규율하는 반면, DMA는 시장구조 자체를 사전에 교정하려는 규제로 일정 기준을 충족한 플랫폼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해 자사 우대 금지, 데이터 결합 제한, 상호 운용성 의무 등을 부과한다. 이는 실제 위법 행위가 발생했는지와 무관하게 위험 가능성만으로도 사업구조 변경을 사전에 요구한다는 점에서 전통적 경쟁법과 구별된다.

EU 규제의 가장 강력한 수단은 과징금이다. DSA 위반 시 전 세계 매출의 최대 6%, DMA는 최대 10%, 반복 위반 시 20%까지 부과할 수 있다. 과징금 산정기준이 EU 역내 매출이 아니라 글로벌 매출이라는 점에서, 이 규제는 사실상 역외적 효력을 갖는다. 필요할 경우 사업분할과 같은 구조적 시정 조치도 가능하다. 이는 EU의 디지털 규제가 글로벌 빅테크의 사업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의 문제 제기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형식상 국적 차별은 없지만 결과적으로 규제 대상이 미국 기업에 집중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차별이라는 주장이다. 둘째, 디지털 규제가 서비스 무역을 제한하는 비관세장벽이라는 인식이다. 셋째, 경쟁법을 가장한 산업 정책이자 '정치적 과세'라는 의심이다.

이 갈등의 전선은 이제 한국으로 확장되고 있다.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한국의 온라인플랫폼공정거래촉진법(온플법)이 직접 거론됐고,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미 국무부가 공식 우려를 표명했다. 이는 한국의 플랫폼 규제가 더 이상 국내 정책에 머물지 않고 한미 간 외교·통상 이슈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미국이 특히 문제 삼는 부분은 온플법의 '사전 지정제'다. 일정 매출이나 이용자 수를 기준으로 규제 대상을 미리 정하는 방식은 글로벌 시장구조상 미국 기업을 정조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미 의회와 재계는 온플법이 소상공인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네이버·카카오 등 한국 플랫폼을 보호하거나 미국 기업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산업 정책적 성격이 있다고 의심한다.

플랫폼 규제가 성장 잠재력에 미치는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미 하원 청문회에서 증언한 콤페테레그룹의 섕커 싱엄 최고경영자(CEO)는 플랫폼 규제가 혁신비용을 높여 향후 10년간 미국 경제에 약 5000억달러, 한국 경제에도 4500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디지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서 플랫폼 위축은 콘텐츠, 게임, 전자상거래, 핀테크 등 연관 산업 전반으로 파급될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기업 보호를 위한 규제가 역설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선의로 출발한 디지털 규제는 플랫폼의 시장지배력 남용을 견제하고 이용자 보호와 공정경쟁 질서를 세운다는 측면에서 타당하다. 그러나 기술혁신을 저해하거나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는 오히려 시장의 역동성을 약화시키고 장기적으로 소비자 후생을 훼손할 수 있으며, 그 비용은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 판매자와 소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도 크다.

규제가 곧 통상이 되는 시대를 맞아 한국은 다음과 같은 점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첫째, EU 모델의 문제점을 경계하고 사전 규제보다는 사후 규제와 자율규제의 정교화를 우선 검토해야 한다.
둘째, 공정성과 혁신의 균형을 유지해 규제가 플랫폼 생태계 자체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규제당국과 통상당국이 긴밀히 협력해 디지털 규제가 곧 무역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하이브리드 통상전쟁' 시대에 대비한 통합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넷째, 해외 빅테크에 대한 실질적 집행력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입되는 성급한 사전 규제는 국내 기업의 손발만 묶는 '역차별의 부메랑'이 되거나 중국 등 제3국 기업에 길을 터주는 새로운 시장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점검할 필요가 있다.

박기순 한중경제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