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 17일 대미투자특별법이 제정됐다. 트럼프 정부와 합의한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를 위한 법적 기반이다. 특별법은 조선, 반도체, 의약품, 핵심광물, 에너지, 인공지능 및 양자컴퓨팅을 전략적 산업 분야로 못 박았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이번 대미투자는 단순한 해외투자가 아니다. 국가 산업정책의 방향이 바뀔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그만큼 국내 공급망과 중소기업이 받을 충격이 작지 않다.
과거 대기업이 해외투자를 할 때 중소기업은 동반진출했다. 2002년 현대차는 중국에 투자했다. 초기 협력업체는 20여개에 불과했다. 이후 120개 안팎으로 늘어났다. 삼성전자의 베트남 협력기업 수는 752개(2021년)에 달했다. LG전자의 폴란드 진출 때도 협력업체가 함께 들어갔다. 협력업체들은 현지에서 제품을 생산하며 한국에서 부품을 수입했다. 당시 해외투자는 수출을 촉진하는 매개체였다.
그러나 이번 미국 투자는 결이 다르다. 특별법이 지정한 전략적 산업은 자본과 기술, 규제 부담이 큰 고위험 분야다. 과거처럼 중소기업이 동반진출하기 어렵다. 게다가 미국은 중국이나 베트남과는 비용이나 규제가 완전히 다르다. 이번에 동반진출은 조선, 에너지, 건설 등 일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들 중소기업이 미국에 안착하도록 정부의 대책과 지원이 필요하다.
더 큰 문제는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팅 같은 미래 산업이다. 뼈아픈 대목이다. 한국이 주목하고 키워야 할 산업이지만, 중소기업이 참여할 생태계는 걸음마 단계다. 그러나 대미투자의 전략산업으로 묶였다. 이번에 해당 산업의 기술과 투자, 수요의 무게중심이 미국으로 옮겨간다. 국내 공급망은 형성의 기회 자체를 놓칠 수 있다. 중소기업이 배우고 성장할 토양이 사라지는 셈이다. 과거 초고속인터넷망 구축이 수많은 벤처 창업과 새로운 생태계를 이끌었던 경험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관심은 투자 규모에만 쏠려 있다. 그러나 진짜 질문은 그 투자 이후 미국과 한국의 공급망과 생태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이냐이다. 미국으로 옮겨가는 자본만 볼 것이 아니다. 한국 안에 남아야 할 기술, 기업, 인력, 다음 세대의 산업 생태계까지 함께 봐야 한다. 대미투자가 불가피하다면, 이제는 이를 기회로 바꿀 전략적 사고가 절실하다. 중소기업과 동반진출해야 한다면, 미국에 강하게 지원을 요구해야 한다. 또한 대미투자로 파생하는 한국의 미국 수출에 대해 무관세 혜택을 얻어낸다면, 이번 투자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첨단산업의 변화 속도는 무섭다. 자본력이 막강한 대기업에 주도권을 맡기는 게 더 효율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대기업의 '나 홀로 성장'은 산업화 시대의 낡은 발상이다. 산업 전반에 생태계가 형성돼야 국가경제도 건강해진다. 아쉽게도 대미투자특별법에는 산업 생태계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대기업의 미국 투자(산업정책)와 국내 중소기업의 생존(기업정책)을 따로 볼 수는 없다.
기업 없이 산업이 클 수 없고, 산업 없이 기업이 성장할 수 없다. 이제 산업통상부와 중소벤처기업부가 머리를 맞대고, 대미투자에 따른 산업 생태계와 중소기업의 성장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초고속인터넷망과 벤처 창업은 산업정책과 기업정책이 함께 만들어낸 걸작이었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