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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西村에서 만난 백석과 윤동주

윤동주가 닮고 싶었던 시인 백석
대표시집인 '사슴' 1936년 출간
발행지는 자신의 하숙집 통의동
'사슴' 필사본 끼고 산 윤동주
인왕산 아래의 누상동서 하숙
벽돌집 '동판'이 관광객 맞아

[fn광장] 西村에서 만난 백석과 윤동주
조성관 작가 ‘지니어스 테이블’ 대표
[fn광장] 西村에서 만난 백석과 윤동주
서촌 필운대로 29에 있는 카페 '백석, 흰 당나귀'. 조성관 작가 제공
올해는 시인 백석(1912~1996) 서거 30주기가 되는 해다. 오십대 이상은 백석 시인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의 시가 교과서에 실리지 않아서다. 백석의 고향은 평북 정주. 1988년 이전까지 백석은 월북 문인들과 함께 금기로 묶였다.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40년여 만에 월북 문인이 해금되면서 그의 시도 교과서에 실렸다. '모닥불'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이 시들은 백석의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인 '사슴'에 수록되었다. 사슴이 출간된 게 1936년 1월 20일. 조선일보 기자였던 백석은 사슴을 자비로 출간했다. 발행부수 100부, 책값은 2원, 자비 출판이라 발행지 주소는 백석의 하숙집 '경성부 통의동 7의 6'.

경복궁 영추문 앞 골목길이 통의동 7의 6이다. 백석은 참가비 1원을 받고 출판기념회를 열기도 했다. 사슴은 출간 즉시 장안의 화제였다. 정지용, 김기림, 신석정, 이효석, 박용철 등이 사슴을 극찬했다. 백석 신드롬이 불었다.

경성에서 '사슴'이 나왔을 때 윤동주(1917~1945)는 만주 용정의 광명중 학생이었다. 시를 습작하던 윤동주도 사슴 출간 소식을 들었다. 경성에서 화제라는 시집을 구하려 애를 썼으나 구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필사를 한다. 윤동주는 필사한 사슴을 끼고 살았다.

1938년 윤동주가 경성의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했을 때 백석은 기자를 그만두고 함흥에 내려가 영어교사를 하고 있었다. 1년여 영어교사를 하다 백석은 경성으로 올라와 조선일보에 재입사한다. 두 사람은 잠깐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었지만 윤동주는 백석을 만나지 못했다. 나이는 다섯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평범한 대학생에게 백석은 너무 높은 곳에 있었다.

1939년 10월, 백석은 신문사를 사직하고 만주행을 선택한다. 당시 조선에 불어닥친 '만주 러시'에 올라탄 것이다. 만주는 기회의 땅으로 알려져 너나없이 만주행 기차를 탔다. 이후 백석은 해방 때까지 만주 일대를 방랑한다.

윤동주는 연희전문 4학년 때인 1941년 기숙사를 나와 하숙을 한다. 중일전쟁 중이라 배급제 시행으로 기숙사 밥이 엉망이어서였다. 그가 하숙을 든 곳이 서촌 누상동 9번지, 소설가 김송의 집. 방이 하나 남아 하숙을 친 경우였다. 김송은 백석이 함흥에 살 때 잠깐 교류가 있던 사람이었다.

당시 서촌에는 누(樓)가 있었고, 이를 기준으로 위아래를 누상동과 누하동으로 불렀다. 누상동은 인왕산 바로 아래. 차갑고 비릿한 바위 냄새가 산 아래 마을까지 스며든다. 겸재 정선이 칠십대에 '인왕제색도'를 그려낸 곳이 이곳 누상동이다. '인왕제색도'는 이건희 컬렉션 1호다. 하숙집 바로 위로 계곡이 흐른다. 수성동 계곡. 동주는 여름철 계곡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발을 씻곤 했다.

1942년 일본 유학을 앞둔 윤동주는 백석처럼 자비 시집 출간을 모색한다. 출판비용을 마련하지 못한 그는 필사 시집을 세 권 만든다. 윤동주는 교토제국대학 입시에 떨어졌고, 2차로 도쿄의 릿교(立敎)대학 영문과에 합격한다.

백석이 방응모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도쿄 아오야마가쿠인(靑山學院)대학 영어사범과에 입학한 게 1930년. 아오야마가쿠인대학은 외국어교육 특화대학으로, 교수진은 전원 외국인이었다. 언어에 재능이 있던 백석은 2년여 만에 영어를 정복하고 3학년 때는 러시아어를 배운다.

윤동주는 백석보다 꼭 12년 뒤에 도쿄 땅을 밟았다. 릿쿄대학 영문과에 다니며 윤동주는 '봄' '쉽게 씌어진 시' '흐르는 거리' '사랑스런 추억' 등을 써냈다.

누상동 9번지는 현재 옥인길 57번지로 바뀌었다. 옛 하숙집은 허물어지고 벽돌집이 들어섰다. 벽돌담 외벽에 윤동주와의 인연을 기록한 동판을 붙여놓았다. 맑은 날 옛 하숙집 앞에 가면 문화해설사와 함께 서촌 투어를 하는 일단의 그룹을 만날 수 있다.

누상동 윤동주 하숙집에서 통의동 백석 하숙집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다.
중간쯤, 필운대로 29에 '백석, 흰 당나귀'라는 작은 카페가 있다. 와인·맥주·식사·커피를 파는 詩살롱이다. 고맙고 따뜻하다.

조성관 작가 ‘지니어스 테이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