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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의 눈물, 이백의 그리움이 겹겹이... 만년의 근심 머금은 동정호[Weekend 레저]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②악양루와 황학루

장강 따라 하늘과 맞닿은 팔백리 수평선
광활한 풍경 위에 세워진 두 개의 누각
당대 문인들의 절세의 문장이 탄생한 곳
악양루 올라 전란의 무게 시로 푼 두보
벗과 이별의 아픔 노래한 이백의 황학루

두보의 눈물, 이백의 그리움이 겹겹이... 만년의 근심 머금은 동정호[Weekend 레저]
중국 후난성에 있는 동정호. 중국관광청 제공

장강을 따라 시를 따라 떠도는 길, 이번 여행지는 삼협을 빠져나온 물길이 동으로 흘러가다 만나는 거대한 호수, 동정호다. 예로부터 '팔백리 동정'이라 불린 이 호수는 바다처럼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여러 강물이 흘러들어 이루어진 이 광활한 수면 위에는 한 점 섬이 떠 있는데, 바로 군산(君山)이다. 옛사람들은 이 섬을 신선이 사는 곳이라 하여 동정(洞庭)이라 이름 붙였고, 그 이름이 호수의 이름이 되었다. 이 동정호를 내려다보는 누각이 있으니, 강남 삼대 명루 가운데 하나인 악양루다. 삼국시대 군사적 목적으로 세워진 이 누각은 세월이 흐르며 풍류의 공간이 되었고, 한 편의 시와 한 편의 글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당나라 두보(712~770)의 '등악양루(登岳陽樓)', 그리고 송나라 범중엄(989~1052)의 '악양루기(岳陽樓記)'가 그것이다.

■두보가 오언율시를 남긴 그곳, 악양루

늙고 병든 몸으로 호남을 떠돌던 두보가 이곳에 올랐을 때, 그의 눈앞에는 끝없는 물과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예로부터 동정호를 들었더니
이제야 악양루에 오르네
오나라 초나라까지 동남으로 터져있고
해와 달이 밤낮으로 이곳에서 떠오르네
친척도 친구도 소식 한 자 없고
늙고 병들어 외로운 배로 떠도는 몸
고향 북쪽은 여전히 전쟁 소식
누각 난간에 기대에 눈물 콧물 흘리네

昔聞洞庭水, 今上岳陽樓
吳楚東南坼, 乾坤日夜浮
親朋無一字, 老病有孤舟
戎馬關山北, 憑軒涕泗流

두보의 눈물, 이백의 그리움이 겹겹이... 만년의 근심 머금은 동정호[Weekend 레저]
악양루

예로부터 듣기만 하던 동정호에 이제야 올라섰으나 그 광활한 풍경은 오히려 그의 딱한 처지를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오나라와 초나라를 가르며 펼쳐진 호수는 해와 달을 띄운 채 우주처럼 출렁이고, 그 아래 한 척의 외로운 배에 늙고 병든 시인이 몸을 의탁하고 있다.

이 시의 정수는 '고주(孤舟)'에 있다. 외로운 배이면서 동시에 세상에 기대지 않는 고고한 존재. 두보의 절망은 단순한 신세 한탄이 아니라, 전란의 시대를 온몸으로 견디는 한 인간의 기개로 읽힌다. 그래서 마지막에 흘리는 눈물조차 개인의 슬픔을 넘어 시대의 슬픔이 된다. 악양루 난간에 기대어 이 시를 읊다 보면, 그가 흘린 눈물이 아직도 마르지 않고 남아있는 듯하다. 나는 예전에 이곳에 올라 두보를 생각하며 짧은 시 한 수를 적은 적이 있다.

천리 동정호여
만년의 근심을 머금고 있구나
북으로는 무협의 한에 통하고
남으로 소상의 근심에 접하였어라
늙고 병들어서도 붉은 봉황을 노래했지만
평생을 흰 갈매기로 떠돈 신세여
난간에 기대어 그의 눈물 자국을 보니
소상반죽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구나

千里洞庭水, 長含萬載愁
北通巫峽恨, 南接瀟湘憂
老病吟朱鳳, 平生是白鷗
憑軒看涕痕, 如竹分明留

천리 동정호는 만고의 시름을 머금고 있고, 그 시름은 그가 떠돈 삼협과 소상(瀟湘)으로 이어진다. 두보의 일생을 떠올리면 뜻은 고고한 봉황이었으나 삶은 떠도는 흰 갈매기와도 같았다. 그가 기대어 울던 난간에 서니 그의 눈물 자국이 '소상반죽'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는 듯하다. 그 '소상반죽'의 전설을 따라 배를 타고 군산으로 들어간다. 군산에는 순임금의 두 아내 아황과 여영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남편의 죽음을 듣고 상수 강가에서 피눈물을 흘리다 숨졌다는 두 여인의 눈물이 대나무에 떨어져 얼룩이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소상반죽이다. 지금도 그 섬에는 두 여인을 기리는 오래된 사당이 남아있어 전설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겹쳐 흐른다.

두보의 눈물, 이백의 그리움이 겹겹이... 만년의 근심 머금은 동정호[Weekend 레저]
군산 은침차

군산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은침차(銀針茶)다. 유리잔에 차를 따르자 가느다란 찻잎들이 떠올라 물속에서 꼿꼿이 서 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죽순이 돋아나는 듯하다"고도 하고, "만 자루 붓이 하늘에 글을 쓴다"고도 한다. 동정호를 바라보며 이 차를 마시고 있으면 자연스레 범중엄의 '악양루기'의 유명한 구절이 떠오른다.

"천하 사람들이 근심하기에 앞서 먼저 근심하고, 천하 사람들이 즐거워한 뒤에야 비로소 즐거워한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동정호의 풍경에 따라 때론 기뻐하고 때론 슬퍼하는 보통의 사람들과 달리 범중엄은 이 광대하고 장엄한 풍경 앞에서도 백성과 나라를 먼저 생각했다. '선우후락(先憂後樂)', 백성에 앞서 근심하고 백성의 뒤에 즐거워한다는 이 한 문장이 악양루를 단순한 절경이 아니라 사유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차를 다 마시고 나니 동정호 위로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이제 다시 장강을 따라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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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루

■이백이 붓을 꺾었다는 그 정자, 각필정

동정호를 뒤로하고 장강을 따라 동으로 내려가면, 장강이 한수와 만나는 도시 무한에 이른다. 장강 남쪽 기슭 사산(蛇山) 정상에는 황학루가 우뚝 솟아 있다. 황학루는 원래 군사용 망루였으나, 시간이 흐르며 문인들이 모여드는 풍류의 공간이 되었다. 누각의 이름은 한 도사가 황학을 타고 하늘로 날아갔다는 전설에서 유래하는데, 누각 안에 그려진 대형 황학 벽화는 이 오래된 전설을 힘차게 웅변한다. 황학루에는 '각필정'이라는 특별한 정자가 있다. 붓을 놓아버렸다는 뜻이다. 당나라 시인 이백(701~762)이 이곳에 올라 시를 지으려 할 때, 누군가 최호의 시 '황학루' 한 수를 보여주었다.

옛사람 황학을 타고 가버리고
이곳엔 황학루만 남았구나
황학은 한번 가서 돌아오지 않고
흰 구름만 천년 세월 유유히 흐르누나
맑은 강 또렷한 한양의 나무들
향기론 풀 우거진 앵무주
날은 저무는데 내 고향은 어느메뇨
안개 자욱한 강가에서 나그네 시름겹구나

昔人已乘黃鶴去, 此地空餘黃鶴樓
黃鶴一去不復返, 白雲千載空悠悠
晴川曆曆漢陽樹, 芳草萋萋鸚鵡洲
日暮鄕關何處是, 煙波江上使人愁

두보의 눈물, 이백의 그리움이 겹겹이... 만년의 근심 머금은 동정호[Weekend 레저]
각필정 현판

황학을 타고 떠난 옛사람, 천년 세월 남겨진 누각, 맑고 향기로운 강 너머 풍경, 그리고 저녁 강가에서 밀려오는 향수. 전설과 현실, 원경과 근경, 몽환과 서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하나의 완결된 세계를 이룬다. 이 시를 읽은 이백은 "눈앞의 경치를 읊어낼 수 없으니, 이는 이미 최호의 시가 위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붓을 꺾었다. 천하의 시인의 붓을 꺾은 대사건이어서 각필정이라는 기념성 건물이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이백에게도 회심의 순간은 있었다. 같은 황학루에서 그는 명편 송별시 '황학루에서 양주로 가는 맹호연을 전송하며(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를 남겼다.

내 오랜 벗이 황학루를 이별하고
꽃이 흐드러지는 삼월 양주로 가는구나
외로운 배 먼 그림자 푸른 하늘로 사라지고
보이는 것은 하늘 끝으로 흘러가는 장강의 물결뿐

故人西辭黃鶴樓, 煙花三月下揚州
孤帆遠影碧空盡, 唯見長江天際流

이제 벗은 배를 타고 황학루를 떠났다.
하지만 이백은 전별의 장소를 떠나지 못한 채 맹호연이 탄 배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의 배가 푸른 하늘 속으로 가물가물 사라져 소멸될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 끝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이백은 스스로 장강의 물결이 되어 맹호연을 따라간다.

두보의 눈물, 이백의 그리움이 겹겹이... 만년의 근심 머금은 동정호[Weekend 레저]

김성곤 방송통신대 중문학과 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