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돈 농촌진흥청장
기후 위기와 국제 정세의 불안은 농업의 일상을 크게 흔들고 있다. 화석연료 중심 에너지 구조는 비료와 농자재 가격변동을 키우고, 폭염과 가뭄, 집중호우로 수확을 앞둔 농가의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이제 식량과 에너지는 더 이상 분리해서 말하기 어렵다. 시설원예와 스마트팜처럼 전력 의존도가 높은 농업이 확산할수록, 에너지 불안은 곧 생산 기반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난방과 냉방, 물 주기와 환기, 환경제어 장치가 멈추는 순간 농업 생산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식량과 에너지 두 과제를 함께 풀어갈 대안으로 영농형 태양광이 주목받고 있다. 농사짓는 땅 위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해, 아래에서는 작물을 재배하고 위에서는 전기 생산을 병행하는 방식이다. 정부도 영농형 태양광 특별법 제정과 농지법 개정을 통해 농지 사용 기간을 현행 8년에서 최대 23년까지 확대하는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영농형 태양광의 본질은 '태양광'보다 '영농'에 있다. 농지가 발전시설을 위한 부지로 전락하고, 농사가 형식만 남는다면 그것은 영농형 태양광이 될 수 없다. 농지 보전과 지속적인 영농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식량 안보와 농업의 공익적 가치가 함께 지켜질 수 있다.
현장의 우려도 충분히 살펴야 한다. 태양광 패널은 빛을 나누어 쓰는 구조인 만큼 작물의 생육과 수량,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작목과 품종, 재배 시기, 패널 높이와 간격, 차광률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만큼 과학적 검증이 필수적이다. 벼와 밭작물처럼 충분한 일조가 필요한 품목은 생산성 저하 가능성을 세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반대로 차나무처럼 적절한 그늘을 활용할 수 있는 품목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다.
농촌진흥청의 역할은 바로 이 지점에서 분명해진다. 영농형 태양광이 현장에 뿌리내리려면 구호가 아니라 과학적 근거가 필요하다. 작목별 적합성, 차광 수준, 재배 기술, 작업 안전성, 경제성까지 종합적으로 검증해 농업인이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영농형 태양광은 농촌의 에너지 자립 기반을 구축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생산된 전력을 저장·관리하고 농업시설과 연계한다면 농촌의 외부 에너지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농가는 비용 부담이 줄고, 농촌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생산 기반을 갖추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방향이다. 농지가 농지답게 유지되고, 농업인이 실질적인 이익을 얻으며,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 영농형 태양광은 농업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농업을 지키면서 에너지라는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농촌진흥청은 현장 실증과 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한국 농업에 맞는 영농형 태양광 모델을 구축해 나가겠다. 농지는 지키고, 농업인 소득을 높이며, 농촌은 에너지 전환의 주체가 되는 길. 그것이 위기의 시대 농업을 지키는 가장 책임 있는 해법이다.
이승돈 농촌진흥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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