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칫돈' 기업투자보다 증시 이동
실물경제는 상대적 위축 가능성
주식투자로 얻은 수익 소비 않고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에 재투자
금투세는 자산 양극화 완화 장치
일정수준 이상 이득 과세 바람직
김영익 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
코스피가 8000선에 육박하는 등 한국 주식시장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인공지능(AI) 혁명에 따른 반도체 호황과 시중 자금의 주식시장 이동이 맞물리면서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투자자에게는 반가운 일이고, 한국 자본시장이 선진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장이 커지고 자산 가격이 빠르게 상승할수록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자본시장에서 만들어진 부는 과연 국민경제 전체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그리고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체계는 지금의 시대 변화에 맞게 설계되어 있는가.
최근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가 다시 논의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금투세를 시장 상승 국면에 찬물을 끼얹는 정책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금투세 논의의 본질은 단순히 세금을 더 걷자는 데 있지 않다. 지금 한국 경제가 직면한 자산시장 쏠림, 소비 부진, 자산 양극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최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제기한 'AI 국민배당금' 논쟁 역시 같은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그는 AI 산업에서 발생하는 초과이익의 일부를 사회 전체에 환원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시장은 이를 사실상의 횡재세나 반기업 정책으로 받아들이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이번 논쟁이 던진 질문은 분명하다. AI 혁명으로 만들어지는 초과이익은 누구의 것이며, 그 부는 어떻게 사회 전체의 성장으로 연결되어야 하는가.
첫째, 지금 한국 경제는 실물경제보다 자산시장으로 돈이 더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한국은행 통화지표를 보면 최근 1년 구M2(광의통화) 증가율은 7.6%였지만, 수익증권을 제외한 신M2 증가율은 4.5%에 그쳤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률과 비교했을 때다. 최근 2년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평균 5.2%였지만 신M2 증가율은 그보다 낮은 3.5%에 머물렀다. 이는 실물경제에 필요한 유동성 공급은 충분하지 않은 반면, 자산시장을 움직이는 돈은 여전히 풍부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기업 투자나 소비 증가보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 상승이 더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원칙이 약하면 자금은 더 쉽게 자산시장으로 집중되고, 실물경제는 상대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한국은 주가 상승이 소비로 이어지는 효과가 매우 약하다. 경제학에서는 주가 상승이 소비 증가로 이어지는 현상을 '부의 효과'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국은행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주가가 1만원 상승할 때 소비는 약 130원 증가하는 데 그친다. 소비 전환율로 보면 1.3% 수준이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의 3~4%와 비교하면 매우 낮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한국 가계는 주식 투자로 얻은 수익을 소비로 연결하기보다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에 재투자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주가 상승→소비 증가→기업 매출 확대→경기 회복'이라는 선순환보다 '주가 상승→차익 실현→자산 재투자→자산 가격 상승'이라는 구조가 더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셋째, 금투세는 자산 양극화를 완화하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다. AI 혁명은 생산성을 높이지만 동시에 자산보유 계층과 비보유 계층의 격차를 더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기업의 초과이익은 결국 주주와 일부 구성원에게 먼저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근로소득에는 매달 세금이 부과되고 사업소득 역시 과세대상이다. 그런데 대규모 금융소득과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면 조세형평성 문제는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투자자에게 동일한 세 부담을 지우자는 것은 아니다. 일정 규모 이하 투자수익에는 충분한 비과세 구간을 둘 수 있다. 그러나 일정 수준 이상의 자본이득에 대해서는 과세원칙이 적용되는 것이 성숙한 시장경제의 기본 질서다.
코스피 8000은 단순한 축제의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자본시장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는 신호다.
시장이 성숙할수록 세제 역시 성숙해야 한다. 금투세 논의의 본질은 세금을 더 걷자는 것이 아니라 AI 시대에 자본시장에서 만들어진 부가 소비와 투자, 그리고 경제 전체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돈의 흐름을 바로잡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데 있다. 지금 한국 경제가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AI가 만든 부는 누구의 것이며, 그 부는 어떻게 국민경제 전체의 성장으로 연결될 것인가.
김영익 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