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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총파업 위기 넘겼지만 '인재 유출 방어' 또 다른 숙제 직면

삼성전자, 총파업 위기 넘겼지만 '인재 유출 방어' 또 다른 숙제 직면
삼성전자 노사의 극적 임금·단체협약 잠정 합의를 이끌어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의 잠정합의안 관련 조합원 찬반 투표를 하루 앞둔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에 걸린 삼성그룹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2026.5.21 ⓒ 뉴스1 김민지 기자


(서울=뉴스1) 양새롬 기자 = 삼성전자(005930) 노사가 극적으로 성과급 합의안을 마련하면서 총파업 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생긴 상처들이 곪아 터지면서 총파업에 버금가는 후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총파업은 단기간에 큰 파장을 몰고 오는 반면 예고된 후폭풍은 가늘고 길게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1차 후폭풍은 '인재 이탈'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반년 넘게 이어진 성과급 갈등 과정에서 "회사가 결국 알아서 챙겨줄 것"이라는 이른바 신뢰가 흔들렸다는 반응이 내부에서 확산하고 있다. 일을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면 정당한 보상이 이어질 것이란 믿음에 금이 간 셈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인공지능(AI) 반도체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핵심 인력 이탈은 곧바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회사 믿고 버텼는데"…흔들린 조직 신뢰

23일 업계에 따르면 총파업 가능성이 고조됐던 시기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이럴 거면 이직하겠다", "기술 들고 경쟁사로 가겠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감정 섞인 과장된 표현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그만큼 내부 피로감과 박탈감이 누적됐다는 신호로 읽힌다.

과거 삼성은 성과 보상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결국 회사가 장기적으로 보상해 줄 것이란 신뢰가 강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졌다는 해석이다.

업계에서는 삼성 특유의 '원 삼성'(One Samsung) 문화가 이번 갈등 과정에서 상당 부분 흔들렸다고 평가한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사업부 간 상호 보완 구조를 기반으로 위기를 돌파해 왔다. 반도체가 부진할 때는 모바일이 버팀목 역할을 했고 모바일이 부진할 때는 반도체나 TV·가전이 힘을 보태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성과급 논란 과정에서 사업부별 이해관계 충돌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실제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중심으로 협상이 진행되자 디바이스경험(DX, 모바일·TV·가전) 부문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반도체 사업부 위주 협상"이라는 불만도 제기됐다. DS 부문의 특별성과급을 골자로 한 잠정 합의안이 나온 직후에는 노노 갈등이 폭발했다. DX 직원들이 중심이 된 전삼노와 동행노조는 잠정 합의안은 졸속이라며 효력 정지 가처분과 투표 무효 소송도 검토하고 있다.

AI 시대 반도체 경쟁력은 결국 '사람'

이처럼 어수선한 조직 분위기는 인재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SK하이닉스라는 '대안'이 있고 마이크론 등 외국 기업들도 삼성전자 인재 모시기에 혈안이 돼 있다.

실제로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은 최근 국내에서 HBM 설계 관련 인력 채용을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핵심 인력을 겨냥한 채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반도체 경쟁은 단순 생산능력보다 첨단 공정 경험과 수율 안정화 노하우를 가진 인력 확보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특히 HBM, 첨단 패키징, AI 메모리 분야는 숙련 엔지니어 의존도가 매우 높다. 공정 최적화 경험과 수율 개선 노하우는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려운 만큼 첨단 공정 경쟁에서는 대규모 설비 투자뿐 아니라 숙련 인력 확보가 핵심 변수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핵심 연구개발(R&D) 인력 일부만 이탈해도 개발 일정과 수율 안정화 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AI 반도체 투자 확대가 이어지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한국 엔지니어 수요는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엔비디아 공급망 확대와 북미 반도체 투자 증가로 HBM·패키징 경험 인력 몸값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는 평가다.

총파업 막았지만…삼성의 진짜 숙제는 이제부터

삼성전자가 이번 갈등을 단순 임단협 타결로만 볼 경우 후유증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잠정 합의안 도출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합의 과정에서 누적된 불신이 더 큰 문제"라며 "블라인드에 올라온 '기술 유출' 언급은 실제 행동 가능성보다 박탈감의 표출로 보는 게 맞지만, 이런 정서가 조직 전반에 퍼져 있다는 점 자체를 경영진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이어 "신뢰 회복의 핵심은 성과급 산정 기준을 보다 투명하고 예측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며 "형식적인 대화가 아니라 실질적인 소통 구조를 구축하고, 최소 1~2번의 임단협 사이클 동안 합의를 안정적으로 이행해야 조직 신뢰가 회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성과급 확대를 둘러싼 주주 반발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논란이 노사 문제를 넘어 지배구조 이슈로 번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일부 소액주주들은 성과급 확대가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명예교수는 "상법 개정 이후 기업 경영진의 주주 보호 책임이 커진 상황에서 과도한 성과급 확대 논란은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삼성전자가 노사갈등 봉합 이후에도 주주 설득이라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