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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통 더위에도 가마꾼이 된 동네 사람들… 축제로 깨어난 마츠리 [전경수의 요지경 日本]

(14) 마츠리
역병을 쫓거나 자연재앙 막으려
신에게 기원하는 의식에서 출발
지역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핵심
한여름 교토 달구는 기온마츠리
이웃과 함께 공동체 결집 보여줘
이제는 일본 넘어 세계의 명물로

찜통 더위에도 가마꾼이 된 동네 사람들… 축제로 깨어난 마츠리 [전경수의 요지경 日本]
매년 8월 12~15일 사이에 열리는 토쿠시마 아와오도리(阿波おどり)의 전야제. 짚으로 엮은 삿갓 모양의 아미카사(編笠)가 특징이다. 얼굴을 가려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깊숙이 써서 얼굴이 살짝 보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사진=전경수 교수

'마츠리'라고 하면 가무가 동원된 방식의 축제라고 생각하는데, 결단코 아니다. 팡파레와 행진으로 시작하는 페스티벌이라기보다는 멕시코나 페루의 피에스타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곳에서 먼저 살았던 분들의 돌아가신 영혼을 맞이하여 위로한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접신용의 술을 마시고 숙취한 상태로 춤을 추는 모습들이 어울린다. 일본에서 마츠리는 '祭り'라고 쓴다. 오래된 동네의 연중행사표를 보면, 일년 내내 마츠리와 관련된 행사들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다. 삼계만령 사상으로 표현되는 애니미즘 최강의 사회가 일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만령을 위한 공양이 마츠리로 행제될 수밖에 없다.

마츠리의 나라 일본… 지역 연례행사 그 이상의 의미

일본 최초로 마츠리를 연구한 민속지는 자그마치 1500쪽이 넘는 '하나마츠리'(花祭, 1930년)이며, 그 저자는 아이치현의 동부인 미카와(三河)를 고향으로 한 하야카와 코우타로다. 천룡천 계곡의 산골 동네에서 정월 초에 며칠간씩 이어지는 마츠리의 절정은 7~8명의 가면 쓴 청년들이 물이 끓고 있는 가마솥 주변을 돌면서 춤을 추는 '유바야시'(湯ばやし) 과정이고, 마지막에는 마츠리에 참여한 관객들에게 복을 나눠주는 상징행위로서 끓는 물을 흩뿌리는 겨울 마츠리다. 커다란 도끼를 들고 춤을 추는 적색 가면의 '사카키오니'가 어린이들의 등을 살포시 밟아주는 '헨베'(反閉)는 역병귀신을 쫓아내고 무병 장수하라는 주술로서, 오랫동안 기억으로 남는 체험이다.

일본 사회변동의 역동성은 마츠리에서 잘 드러나기 때문에, 마츠리가 도시인류학이란 관점으로 일본을 연구하는 안성맞춤인 주제라는 인식도 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요코하마 롯카쿠바시의 동네에도 '초나이카이'(町內會)의 공지판에 봄부터 스기야마신사(杉山神社)의 '나고시오하라이'(夏越大祓)의 안내문이 나붙었다. 마츠리로 여름 더위를 잘 넘기자는 뜻이다.

혈연의 조상 제사에만 몰입하는 세계관의 한국인들은 죽었다 깨도 공감하지 못하는(이해는 하겠지만) 부분이 지연 관계의 일본사회다. 한국인들에게 혈연의 의미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일본인들에게는 지연 관계의 인생살이가 핵심이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장소의 의미가 이토록 중요할까. 땅으로 연결된 인생살이의 의미가 피로 연결된 인생살이만큼 중요하다는 논리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요코하마의 츠루미구에 있는 스기야마신사에서 개최된 마츠리에는 13대의 '미코시'(神輿)가 무도 행렬을 이었고, 늦은 오후의 약속된 시간에 스기야마신사 앞에 정렬해 신관이 주제하는 제사 과정에 참여한다. 이후, 모두가 함께 접신하는 술판이 이어진다. 지역사회의 모든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착종되어 있는 삶의 장소로서 이웃관계와 이웃들의 연결인 공동체가, 지역을 창조한 신에 의해서 매년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의 제사가 마츠리다. 신이 정좌한 자리에, 신의 허락에 의해서 사람들이 주민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신앙이다.

신과 주민들은 '우지카미'(氏神)와 '우지코'(氏子)의 관계다. 마츠리에 참여하면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신사의 조직도 오야붕과 코붕 관계를 유지한다. 카나가와현 일대에 자리잡은 스기야마신사의 분원에 해당되는 나마무기 지역의 메이신신사(明神神社)에서는 본사의 '레이타이사이'(例大祭)에 참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별도의 날을 받아서 '쟈모가모마츠리'(蛇も蚊も祭)를 한다. 마츠리의 구성과 내용 그리고 진행방식이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소학교의 운동장을 빌려서 진행하는 마츠리에는 네 개의 구역으로부터 각각의 팀들이 창포와 짚을 엮어 만든 초록색 머리를 한 뱀 모습의 긴 줄을 매고, 편싸움을 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동일한 츠루미구에 속해 있지만, 마츠리상으로는 별도의 삶의 공간이 존재한다.

일본의 도시발전사와 궤를 함께하는 마츠리의 분포와 구성이 복잡한 실타래처럼 엉켜 있고, 과거 해변의 매립지대가 도시로 변한 곳에 이주해온 사람들의 정착 과정과도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다. 쟈모가모마츠리는 도시형성 이전의 토박이들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는 마츠리임에 대해서 레이타이사이는 도시 확장과 '혼죠도리잇쵸메'(本町通一町目) 자치회처럼 외국인 거주자들의 참가에 의한 글로벌 현상의 장면까지 연출하고 있다. 사람이 모여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마츠리의 일본사' 과정이 잘 드러난다.

종교민속학자 나카야마 타로가 편찬한 '일본민속학사전'(1940년)에는, 나가노에 총본사가 있는 스와대사(諏訪大社)의 '온바시라마츠리'(御柱祭)의 중요한 과정은 온바시라 4본의 신성한 기둥을 세워서 사방 경계를 한다고 썼다. 그 스와대사의 요코스카 분원의 온바시라마츠리는 총본사로부터 신성화된 절차를 밟은 온바시라 2본을 분양받아서 가지고 오는데, 이 과정이 '사토히키'(里曳き)다. 요코스카의 '우지코'(氏子)들이 신사의 신관인 '구지'(宮司)의 지휘하에 기중기를 동원하여 신사의 경내에 세우는 '타테온바시라'(建御柱) 행사가 마츠리의 절정을 이룬다. 지역의 정치가들이 유권자들에게 얼굴을 내밀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마츠리의 원만한 진행을 위한 당연한 물주의 역할을 한다.

찜통 더위에도 가마꾼이 된 동네 사람들… 축제로 깨어난 마츠리 [전경수의 요지경 日本]
일본 교토 기온마츠리

천년 역사, 교토의 기온마츠리… 삿포로 요사코이도 이색적

마츠리를 구성하는 다양한 행사들의 원만한 진행을 위해서는 촘촘하게 연결된 여러 단계의 부문별로 담당자들이 배정되어 있고, 수개월 전부터 담당자들은 준비 모임을 거듭한다. 그 과정이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시집간 딸들도 자녀들을 데리고 돌아와서 미코시를 함께 메고 춤을 추는 주민 참여의 행사가 마츠리인 일본에서는 이미 마츠리경제의 생산성에 관한 연구도 적지 않게 진행되어 있다. 후덥지근하기로 이름난 교토의 여름을 달구는 기온마츠리는 그 역사적 깊이와 함께 이미 세계적인 명물이 되었고, 새로운 형태의 마츠리로 자리잡은 코우치와 삿포로의 요사코이도 그 경제적 효과는 이미 증명되었다.

관 주도 동원 형식의 축제로 가수의 출연 교섭에 안간힘을 쓰면서 애꿎은 공무원들만 닦달하는 한국의 지방정부들이 제대로 한 수를 배울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것은 결코 흉내를 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찜통 더위에도 가마꾼이 된 동네 사람들… 축제로 깨어난 마츠리 [전경수의 요지경 日本]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