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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서랍 속 특허'를 깨워야 할 때

[차관칼럼] '서랍 속 특허'를 깨워야 할 때
김용선 지식재산처장
"사실 그 특허는 없앨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없앨 특허가 아니라 깨워야 할 특허였습니다."

국내 한 대학 연구진이 20여년 전 개발한 와이파이 콜링(Wi-Fi Calling) 원천특허는 오랫동안 서랍 속에 잠들어 있었다. 당시 사업성이 크지 않다고 봤던 이 특허는 매년 내야 하는 유지료 부담 때문에 포기를 고민하게 했다. 하지만 이후 미국 주요 통신사들이 사용하는 핵심기술로 자리 잡았고, 특허 라이선스 협상을 통해 수백억원의 가치를 창출했다. 연구실에서 탄생한 아이디어가 시장과 연결되며 새로운 자산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 일화는 '특허의 가치는 등록에서 끝나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나라는 작년 기준 국내 특허출원 약 26만건으로 세계 4위의 특허 강국이다. 그러나 국민 세금이 투입된 국가 연구개발의 산물인 대학·공공연 특허의 연간 기술이전 수입은 2800억원에 그치고 있다. 이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한 곳의 6400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특허를 만드는 역량과 이를 시장의 가치로 연결하는 역량 사이에 극명한 간극을 보여준다.

해외에서는 이미 특허가 기업의 미래 성장을 이끄는 전략자산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코닥은 경영위기 속에서도 특허를 매각해 회생의 기반을 마련했고, 노키아는 휴대폰 시장의 주도권을 잃고 사업을 철수했지만 그간 축적해온 특허자산 라이선스를 통해 작년 한 해에만 3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제품은 사라져도 제조의 근간이었던 우수한 특허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한다.

최근 특허 등 지식재산권(IP)을 전문으로 발굴, 가치를 평가해 거래와 라이선싱을 지원하는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중 생산활동 없이 매입한 특허권을 활용해 소송을 제기하는 기업을 NPE(Non-Practicing Entity)라고 부르며, 이들의 행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에서 고품질 특허가 제값을 받도록 돕는 긍정적 측면도 부정하긴 어렵다. 특히 특허 사업화 경험이나 전문인력이 부족한 대학·공공연과 중소기업에는 특허를 시장과 연결시켜 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이젠 'NPE'나 '특허괴물'보다 'IP수익화 전문기업(PME·Patent Monetization Entity)'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식재산처는 시장성 높은 우수특허를 발굴해 지식재산펀드 등 민간투자 확대로 연결시켜 특허로 돈을 버는 시장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개별 특허의 일회성 거래가 아니라, 특허가 투자와 수익화로 이어지고 그 성과가 다시 연구개발과 고부가가치 특허 생산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는 일이다. 이러한 흐름이 자리 잡을 때 지식재산은 권리 그 자체를 넘어 진정한 기업의 성장 전략자산이자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서랍 속에는 시장에서 화려하게 비상할 수 있는 특허가 잠들어 있을지 모른다.
이제는 그 특허가 일을 하도록 깨워야 할 때다. 대한민국이 특허를 많이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알짜 특허들로 기업과 국가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지식재산이 대한민국의 진짜 성장을 떠받치는 든든한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확신한다.

김용선 지식재산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