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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AI 셧다운과 백신의 경고

[포럼] AI 셧다운과 백신의 경고
문애리 덕성여대 약대 석좌교수
얼마 전 평소처럼 인공지능(AI) 모델 클로드를 켰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화면에 뜬 "Fable 5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문 때문이었다. 앤스로픽이 선보인 최신 모델 '페이블(Fable) 5'와 '미토스(Mythos) 5'가 미국 상무부의 수출통제 조치로 순식간에 차단된 것이다. 다행히 19일 만에 통제가 해제됐지만, 그 짧은 순간의 낯선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제 AI 없이는 일상도 업무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런데 한 국가의 정책 결정 하나로 다른 나라의 AI 인프라가 언제든 멈춰설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섬뜩한 현실이었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개념이 '소버린 AI(Sovereign AI)'다. 자국의 데이터와 인력, 알고리즘으로 독자적인 AI 영토를 구축하고 통제하는 역량을 뜻한다. 우리나라도 이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5개 기업과 손잡고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의 닻을 올렸고, 2027년까지 5300억원을 투입해 톱티어급 한국형 AI를 완성한다는 밑그림을 그려둔 상태다. 이 예기치 못한 'AI 셧다운' 소동을 겪으며, 잔인했던 코로나19 시절의 기억이 겹쳐졌다. 마스크 없이는 숨 쉬기 어려웠고, 국경이 닫힌 채 비대면이 일상이 됐던 그 시절, 구원투수로 등장한 건 화이자·모더나 같은 글로벌 제약사의 백신이었다. 통상 10년 걸리던 백신 개발을 단 1년 만에 끝낸 인류의 기적이었다.

하지만 '백신 주권'이 없던 우리는 그 기적을 구걸하듯 확보하려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당시 필자는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장으로서 국내 백신 개발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확보하려 사방으로 뛰던 기억이 생생하다. 덕분에 국산 백신 플랫폼 기술이라는 값진 씨앗을 어렵사리 심었고, 그중 일부 항원 설계 방법론은 국내 개발 백신 중 유일하게 임상3상까지 나아가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엔데믹 전환과 함께 관심과 지원은 빠르게 식었다. 정부 지원은 단계별 단발성에 그쳤을 뿐, 상용화와 글로벌 허가까지 이끌 지속적인 뒷받침은 없었고 완제 생산도 사실상 멈췄다. 결국 어렵게 심은 씨앗은 꽃피우기도 전에 관심 밖으로 밀려난 셈이다. 진짜 우려는 그 이후부터였다. 위기가 지나자마자 감염병 연구개발(R&D) 투자액은 슬그머니 줄어들었다. 지금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질병 X(Disease X)'가 언제든 국경을 넘어올 준비를 하는데, 우리는 소나기가 그쳤다고 우산부터 내던지는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외국에 손 벌리지 않고 자국 기술로 국민을 지키는 능력, 즉 '소버린 백신'의 중요성은 소버린 AI와 정확히 같은 궤적을 그린다. 각국이 자국 물량부터 빗장을 걸어 잠그던 팬데믹의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AI와 백신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불이 난 뒤에야 소방서를 지으려 하면 이미 늦는다. 탄탄하게 다져놓은 독자적 기술과 인프라만이 진짜 위기 속에서 우리를 지켜줄 든든한 방패가 된다. 해외 AI 접속 셧다운 하나에, 혹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하나에 국가 전체가 흔들리지 않는 미래, 그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차분히 쌓아 올려야 할 예산이라는 주춧돌과 지속적인 관심에서 시작된다.

문애리 덕성여대 약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