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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주택시장 흔드는 '주거 안전주의'

[포럼] 주택시장 흔드는 '주거 안전주의'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부동산 시장을 분석할 때 우리는 흔히 데이터의 힘에 의존한다. 금리, 가격, 거래량 같은 통계는 향방을 예측하는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계로 환산되지 않지만 주거문화를 밑바닥부터 재편하고 있는 실존적 목소리가 존재한다. 최근 젊은 세대, 특히 여성층을 중심으로 뚜렷하게 관측되는 '안전강박'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와 그레그 루키아노프는 현대 젊은 세대의 핵심 심리적 기제로 '안전주의(Safetyism)'를 꼽았다. 안전을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절대 원칙으로 떠받드는 문화를 의미한다. 물리적 위해를 넘어 정서적 불편함까지 위험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심리적 특성은 주거 선택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오늘날 부동산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다.

흥미로운 점은 안전공간에 대한 인지가 성별에 따라 차이를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한 해외 연구논문에 따르면 남성은 주거의 경계를 개별 가구의 현관문으로 한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여성은 단지의 외곽 울타리와 출입 게이트를 사생활 영역의 시작점으로 꼽는다. 단지 내부의 모든 공유 공간을 보호받아야 할 사적 영역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른바 '확장된 거실'의 개념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공간 통제권과 심리적 영토 의식이 한층 더 강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성에게 안전은 선택이 아닌 기본값이다. 집은 단순한 자산 가치의 척도를 넘어선다. 외부 세계의 불확실성으로부터 자신을 격리하는 심리적 방패이자 안전지대의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공간이다.

한국의 단지 중심 아파트 문화가 가진 폐단은 적지 않다. 외부와 구분하고 이웃 간의 교류를 단절하는 폐쇄적 커뮤니티는 도시의 삭막함을 가중시킨다. 그래서 '아파트 공화국'보다 '단지 공화국'이 더 문제라고 지적하고 이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담장을 낮추고 보행로를 연결하여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열린 도시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의 관점에서는 지극히 합당한 논리일 수 있다. 하지만 안전에 민감한 개인의 눈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낭만주의로 비칠 뿐이다. 늦은 밤 어두운 골목길을 홀로 걸어본 이들이라면 쉽게 공감한다. 단지 선호현상을 공간의 이기적인 소비로 지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여성의 안전주의 심리를 고려하면 무조건 비판만 할 수는 없다.

이 같은 주거의 안전주의 트렌드는 향후 주택 공급 대책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최근 빌라나 다세대·다가구 주택 등 전통적인 서민 주거지는 공급이 사실상 마비되었다. 빌라 전세사기 여파와 영세 주택업자들의 자금난이 겹친 탓이다. 여기에 일부 젊은 여성은 안전을 이유로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꺼리는 현상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대도시 전월세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왕성한 주택수요층인 젊은 층의 심리적 니즈를 고려해야 한다. 그 방향성은 도시형생활주택이나 오피스텔, 소형 아파트 등 보안이 철저한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짓더라도 보안 시스템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주택 공급은 원론보다 달라진 현실에 기초를 둔 실천론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인간이 공간을 통해 얻고자 하는 '심리적 안녕감'의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