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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과 쇼군’ 양극체제 때 안정… 권력 집중되니 군국주의화 [전경수의 요지경 日本]

(18·끝) 천황
수많은 ‘천황 신화’ 현대까지 영향
천황이 신을 지배하는 나라로 읽혀
2차대전 말 100만명 희생될 때도
‘천황수호’ 조건으로 비밀협상 시도
양극체제 시기가 역사상 가장 평화
명치유신 이후 일극 부활되며 비극

‘천황과 쇼군’ 양극체제 때 안정… 권력 집중되니 군국주의화 [전경수의 요지경 日本]
천황의 역사를 '만세일계'라고 하지만, 역사상 천황이 복수로 존재했던 시기는 두 번 있었다. 중세의 남북조 시대에 두 명의 천황이 있었고, 미군점령기 맥아더 장군이 '아메리카 천황'으로 인식됐다. 지난 1945년 9월 맥아더 장군(왼쪽)과 히로히토 천황이 나란히 서있다. 위키백과 제공
열도에서 '이인'(異人) 신화는 해진(海進)과 해수면 상승으로 남쪽의 오스트로네시안 계통 사람들이 이동한 과정의 전승이고, '신인'(神人)이 중심에 등장하는 시점은 대륙으로부터의 도래인 시대다. 전자는 바다를 통한 수평이동으로서 지배자는 없다. 후자는 하늘로부터 수직강하의 신화를 구성하면서 지배자가 등장한다. 이러한 과정을 오카 마사오는 문화층 가설로 설명해 비엔나대학의 민족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동과 교류의 '이인'으로부터 정주와 지배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신인'으로의 상징대체가 일본 고대사의 핵심 줄거리다. 전자를 증명하는 동남부 해안의 승문토기와 목선을 반출하는 패총 유적들, 후자를 증언하는 시모노세키의 도이가하마 유적의 인골과 큐슈의 요시노가리 유적들이 대륙 문화와 얽힌 유물들을 보여준다. '고사기'와 맞추면, 천황에 대한 인식과 역사적 등장은 청동기시대 후반이며, '위지동이전'의 왜인조는 천황 등장 직전의 정치적 상황을 소국 집단으로 설명한다. 천황과 관련된 엄청난 양의 신화가 있고, 그것은 현대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일본의 유일하고 영원한 영웅은 천황

대동아전쟁의 패색이 짙은 1944년 정초의 '민간전승' 잡지에 "수없이 많은 신들은 국가의 것"이라는 주장을 전개한 사람은 일본민속학의 창시자 야나기타 쿠니오다. 그가 중요하게 다뤘던 심의현상의 핵심이 신과 관련되었음을 감안하면, 신이 국가의 소유라는 진술에 이어서 연상되는 문제는 천황의 지위다. 국가는 천황의 소유라는 주장을 더하면, 일본에서 신은 천황의 소유라는 구도가 성립한다. 신국(神國)의 의미는 '신의 나라'가 아니라 천황이 신을 지배하는 나라로 읽힌다. 영웅 만들기의 신화적 주인공인 천황, 일본의 유일하고 영원한 영웅은 천황이라는 존재다. 이 논리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신화가 필요하고, 신화화의 작업이 층층시하로 진행된 결과 19세기 말까지 일본 학계에서 천황과 관련된 연구는 엄격한 금기였다. 2월 11일은 기원절이라고 명명된 국정공휴일이고, 기원전 660년 초대 천황의 즉위일이란다. 신화가 만들어낸 세계관의 표현이다. '만세일계'의 천황이 일본 역사의 중심이며, 황국사관이 전쟁사와 깊은 관련성을 보인다.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로서 동경제대 교수를 지내며 지진 연구의 기초를 닦은 카길 놋 박사가 19세기말에 남긴 '일본인의 성격'이라는 글이 '스코틀랜드 지질학잡지'에 있다. "일본인의 역사는 영웅주의에 대한 비극적인 이야기들로 넘쳐난다. 비극은 여전히 존재하며, 바라건대 영웅적인 면모 역시 지속되기를 바란다." 놋 교수가 지적한 비극적 역사의 주인공이 천황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패가 갈린 시점은 대서양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었고, 독일은 1945년 5월 8일 항복했다. 동쪽의 태평양에서 '대동아전쟁'이란 명분으로 저항했던 일본군의 전투가 인류전쟁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연합군의 공격으로 오키나와전(20만명 사망), 히로시마 원폭투하(20만명 사망), 나가사키 원폭투하(20만명 사망)로 대전은 종결됐다. 그 3개월 사이 일본은 중립국을 통해 '천황수호'를 조건으로 비밀협상을 시도했으며, 동일 기간 전선에서 사망한 군인과 민중의 숫자를 합산하면 100만명이 넘는다. 대전 중 사망자의 대다수가 이 기간에 집중됐다. 최소한 100만명의 인명보다 무거운 존재가 천황이라는 제국일본의 황국신앙이 증명된 셈이다.

와세다대학에서 '토속지'를 강의했던 호라 토미오는 "국내 통일 전쟁에서 군의 총사령관으로서 분투했던 고대의 천황과, 정치와 군사에 관여하지 않는 신성군주로서 후대의 천황"으로의 진행, 그 결과 "천황이 행정적·군사적 군주에서 친정을 하지 않는 종교적 군주로 변화해 간 과정"이 있다고 했다. 12세기말 카마쿠라 막부의 등장으로 천황불친정(天皇不親政)의 전통이 유지되면서 실질적인 통치는 '쇼군'이 담당한 양극체제의 전통이 중세 이후 역사다. 일본사회의 집단의식의 핵심이자 정점에 해당되는 마음으로서의 천황, 그에 대해서 장군은 몸의 자리, 따라서 심-신 호미오스테시스를 지향하는 과정이 이상적 역사관일 수 있다. 그 상태가 무너지는 사회변동이 대정봉환(大政奉還)의 명치유신이었고, 친정 즉 천황이 정치와 군사에 직접 개입하는 일극체제의 시작이 현대사다. 천황친정은 군국주의의 부활을 수반했으며, 일극체제가 패전의 파탄으로 결과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의 의미가 무겁다. 천황친정과 상징천황을 역사적으로 체험한 입장에서 본다면, 상징이라는 현상은 친정에 못지 않은 권력으로 인식되는 것이 일본문화론과 일본인론을 만족시킨다. 유교의 현실주의에 물든 사람들이 이러한 측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도 지적하고 싶다.

Esoteric의 라틴어 어원은 esotericus로서 eso는 '내부의', Exoteric의 어원은 exotericus로서 exo는 '외부의'라는 뜻이다. 전자는 비전(秘傳), 후자는 통속(通俗)이라는 의미다. 비전화와 통속화를 대입한 구도를 천황과 관련시켜 보면 그 역동성이 보인다. 천황의 지위가 통속화로 강하게 진행되는 때가 명치시대다. 근위대가 강화되고, 불교의 승려들도 근황승으로 진을 쳤고, 모든 권력이 천황에게 집중되면서 일본은 전쟁가도를 달렸다. 명치헌법이 군부의 독립된 권한을 부여한 조문이 제11조의 통수대권과 제12조의 편제대권이다. 이 조문들을 발판으로 군부의 대표가 천황에게 직소하는 통로를 확보함으로써 군국주의화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결과적으로 명치유신이 1945년의 패전과 미군점령을 부른 원인이 되었다. 그 반대로 일본 역사상 가장 평화로웠던 토쿠가와(德川) 260년간 성속양분(聖俗兩分), 즉 실권은 에도(江戶)의 쇼군에게, 천황은 카미카타(上方)의 교토에 자리했다. 현재도 천황의 역사는 한치의 변함없이 지속하고 있다. 최근 단행된 여성천황 불가론의 결론이 그것을 반증한다. 양극안정론과 일극파탄론의 역사구조가 읽힌다.

■軍과 천황, 일극체제 이루며 비극 싹터

영웅이란 블랙홀이 민초의 공적을 싹쓸이하는 구조를 정사(正史)라고 풀이하는 역사학의 함정을 반복적으로 읽어내는 힘을 기르는 연습이 민주주의적 학문을 향한 역정이다. 19세기말 동아시아의 굵직한 전쟁의 최고책임자가 천황임은 분명하다. 결자해지를 명분으로 대화합의 의지와 실천을 요구한다. 동아시아 평화의 미래를 열어가는 힘이 천황에게 있다. 1971년 10월 당시 히로히토 천황이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을 방문했을 때, 숙소 앞에 '히로히토라-'(히로히토+히틀러)라는 반일 현수막이 걸렸고, 항의 데모대가 던진 물건으로 승용차 전면 유리가 파손되기도 했다.
2000년에는 아키히토 천황이 네덜란드를 방문했고, 올해는 나루히토 천황이 그야말로 국빈대접의 친선방문을 했다. 지극히 계산된 방문이 진행되고 있음을 직감한다. 금기는 깨어짐으로써 존재 의미를 부각시킨다. 천황은 먼 친척집으로 인식하는 한국을 방문할 수 있을까? 이른바 독일식 사죄를 전제로 해도 불가능할까?
‘천황과 쇼군’ 양극체제 때 안정… 권력 집중되니 군국주의화 [전경수의 요지경 日本]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