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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세금제도, 로마를 배워라

로마 낮은 세율 200년 이상 유지
피지배 이민족도 세금불만 없어
말기 과중한 세금으로 몰락 가속
우리는 소득대비 실질세율 60%
재산세와 상속세 감안하면 70%
정책실패 덮기 위한 세제개편 안돼

[fn광장] 세금제도, 로마를 배워라
김경준 전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미국 건국의 공로자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이라고 통찰했다. 영국에 대항한 독립전쟁이 발발하는 도화선이 홍차에 부과한 세금에 반발한 보스턴 차 사건이었기에 그는 신생국 성패의 핵심을 세금제도로 이해하였다.

인류 역사에서 명멸한 왕조와 국가의 흥망성쇠는 세금의 관점에서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공공부문 팽창, 과중한 조세, 납세자 반발, 정치권력 교체의 순서이다. 일반 납세자의 입장에서 국가가 내세우는 명분은 추상적 개념이지만 세금고지서는 실체적 현실이다. 따라서 현실세계의 실존과 직결되는 세금제도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국가권력이 내세우는 어떠한 대의명분과 감언이설도 불태워버리는 발화점이다.

고대 로마는 이탈리아반도 중부의 작은 촌락에서 출발하여 700년간의 성장기를 거쳐 서부 유럽, 북아프리카에서 중동에 이르는 지중해 전역을 석권하였다. 건국 이후 왕정, 공화정, 황제정이라는 정치체제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실체적 연속성을 유지하였던 핵심이 세금제도의 안정성이었다.

건국 초기 로마 세금의 주종은 병역의무였다. 각자의 사회적 지위, 경제적 능력에 따라 군대에 복무하였다. 지휘관은 원로원 계급, 기병은 말을 소유한 기사계급, 병사는 일반 시민이 생업을 일시 중단하고 참전하였으며 프롤레타리아로 불리는 재산없는 무산자는 면제받았다. 군대 복무는 자유시민의 자부심이었고 군대의 역할과 평판이 사회적 명망으로 직결되었다. 로마가 본격적으로 확장하고 재정규모가 커지면서 신규 세금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로마는 낮은 세율을 오랫동안 유지하였던 점에서 탁월했다.

기원전 1세기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100여년의 혼란과 내전으로 팽창한 군대를 감축하여 공공지출을 억제하는 동시에 세제를 개혁하였다. 로마 시민은 일상생활에서 6% 이하의 간접세를 납부하였고 직접세로는 노예해방세 5%, 상속세 5%가 있었다. 그나마 6촌 이내의 상속세는 면제되었다. 이후 무려 200년 이상 동일한 세율을 유지하였다.

아우구스투스의 세제는 본국을 포함하여 지배권역 전체로 적용되어 후일 팍스로마나로 불리는 서양 역사상 최고의 번영기로 이어졌다. 합리적 세금제도는 로마가 언어와 풍습, 종교와 혈연이 각기 다른 다양한 집단을 포용하여 개방적 플랫폼으로 발전하는 동인이었다. 피지배 민족 입장에서 로마의 통치는 비록 이민족이지만 낮은 세율, 튼튼한 안보, 풍부한 인프라로 삶의 질을 높여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지적 저항은 있었지만 로마 체제를 뒤흔드는 대규모 반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3세기 후반부터의 쇠퇴기는 세제 혼란으로 시작되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납세자가 우선이다. 국가는 세입이 필요한 경우에만 걷는다"는 개념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국가가 우선이다. 국가는 필요하면 세금을 걷는다"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과중한 세금이 부과되면서 로마의 몰락은 본격화되었다.

21세기 우리나라는 2000년 전 로마의 세제를 세율과 안정성의 두 가지 측면에서 벤치마킹해야 한다. 아우구스투스 세제개편은 '넓고 얕게 걷는다'의 개념으로 모두에게 예외 없이 부과했다. 모두가 내기에 불만이 적었고, 세율이 낮았기에 탈세보다는 마음 편하게 납부하였다. 이러한 개념과 제도를 후대 황제들도 계승하여 공공지출 증가를 억제하고 제도의 근간을 유지하여 세제에 대한 안정성을 확보하고 납세자의 신뢰도를 높였다.

로마의 세제를 프리즘으로 현재 우리나라를 투영하면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납세자 소득의 일부분을 징수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소득 자체를 약탈하는 지경이다. 최고세율 기준으로 국민연금, 건강보험을 포함하면 소득 대비 실질세율이 60%에 육박하고 재산세, 상속세를 감안하면 평생 소득의 70%가 세금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세금제도의 불안정성이다. 정치적 선동을 위해 수시로 세제를 개편하고 정책적 실패를 덮기 위해 세금을 동원하는 행태이다. 세금 폭탄이 사방팔방에서 터지는 상황에서 10년은 고사하고 1년을 내다보기도 어렵다.

16세기 서양의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아버지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의 상실은 좀처럼 잊지 못한다'고 갈파했다.
역사적으로 세금제도의 난장판은 정권 차원을 넘어서 체제 자체의 위기로 증폭되는 경우도 많았다. 합리적 세금제도는 건전한 국가의 기초체력이자 자유시민의 자부심이다. 하지만 경제적 성취에 대한 징벌 도구이자 정치권력의 약탈 수단으로 전락하면 갈등과 혼란의 기폭제로 돌변함을 직시해야 한다.

김경준 전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