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태창 우송대 교수
서울은 집을 지을 새로운 공간을 찾고, 지방도시는 사람이 빠져나간 상권의 빈 공간을 걱정한다. 하나는 공간 부족이고 다른 하나는 공간 과잉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문제는 결국 같은 질문으로 만난다.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도시공간을 제대로 쓰고 있는가.
상권 침체와 빈 점포 증가는 단순한 골목경제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 주거불안, 수도권의 높은 주택가격, 지방의 인구감소와 원도심 쇠퇴가 맞물린 도시구조의 문제다. 그럼에도 정책은 상권·주택·청년·지역소멸을 따로 다룬다.
그동안 전통시장과 지역상권 정책은 시설현대화, 주차장, 창업지원 등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인구와 소비수요가 줄어드는 지역에서 빈 점포를 다시 점포로 채우는 방식은 지속되기 어렵다. 상업수요가 감소하는데 상업면적을 유지하면 공실과 재정투입이 반복된다. 이제는 손님을 더 오게 하는 것보다 이 공간에 어떤 기능을 배치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필요한 것은 상권 활성화가 아니라 상권 기능의 재편이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은 신규 택지 확보가 쉽지 않다. 새로운 개발공간을 계속 찾는 방식에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도시 안에서 기능이 저하된 장기 공실 상가와 노후시장, 저이용 상업공간을 새로운 도시자산으로 봐야 한다.
오래된 상권은 원도심이나 역세권, 생활권 중심부에 있어 기존 인프라 활용에 유리하다. 장기 공실 점포와 노후 건축물을 매입·정비해 청년·신혼부부 주택, 공유업무공간, 돌봄·문화시설 등을 도입할 수 있다. 노후시장은 저층의 시장·상업기능을 유지하고 상층에 주거기능을 배치하는 복합개발도 가능하다. 핵심은 개별 건물의 용도전환을 넘어 상권이나 블록 단위에서 상업·주거·생활서비스의 적정 비율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정책의 핵심은 주택 몇 호를 더 공급하는 데 있지 않다. 상권 안에 정주인구를 형성해 상업수요를 다시 만드는 데 있다. 청년과 신혼부부가 거주하면 주거수요는 생활수요로, 생활수요는 기존 점포의 기초수요로 이어진다. 사람을 불러오는 정책에서 사람부터 살게 해 상권을 유지하는 정책으로 순서를 바꿔야 한다.
지역별 전략도 달라야 한다. 수도권은 '주택공급형 상권재편', 지방 중소도시는 '정주인구 확보형 상권재편'이 필요하다. 모든 시장과 상권을 주거시설로 바꾸자는 것은 아니다. 경쟁력이나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상권은 보존하고, 장기 공실이 누적되면서도 교통과 생활 인프라가 양호한 지역을 선별해야 한다.
장기 공실률, 상업수요 변화, 주택수요, 교통 접근성 등을 종합 진단하고 공공매입, 민관복합개발, 상업면적 적정화, 도시계획 인센티브, 기존 상인의 재정착을 하나의 사업체계로 묶어야 한다. 정책 칸막이도 넘어야 한다. 행정은 분절되어 있어도 도시공간은 하나다.
상권정비법 제정을 통해 가칭 '상권기능 재편형 사업'을 시범 도입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땅만 찾는 것이 공급정책은 아니다.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기존 공간의 기능을 바꾸는 것도 공급정책이다.
빈 점포도 가게만이 아니라 집, 일터, 생활서비스 공간으로 다시 봐야 한다.
인구구조와 소비방식이 변했다면 상권의 기능도 변해야 한다. 상권을 살리려면, 사람부터 살아야 한다.
류태창 우송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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