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요금은 '서비스나 시설을 이용할 때 내는 돈'이고, 가격은 '물건을 살 때 내는 돈'이다. 요금은 정적이고 톱다운 방식으로 책정되지만,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맞춰 시장에서 그때그때 정해진다. 오늘날 우리는 전기 사용 대가를 전기가격이 아닌 전기요금이라고 부른다. 이게 맞는 표현일까?
전기가 공공서비스처럼 소비되던 시절에는 '요금'이 자연스러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전력 시장이 복잡해지고 기술혁신이 등장하면서 많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가 도매·소매 체계를 가격 중심으로 바꾸었다. 첫째 이유는 가격이 요금보다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가격의 발견'으로 자원의 효율적 배분, 시장 정보의 집약·전달, 거래비용 감소, 위험 관리 및 예측, 혁신과 생산 유인이 가격의 장점이다.
수요와 공급이 급변하는 가격 체제에서는 시장 실패 위험도 있다. 2000년대 초 캘리포니아 전력위기와 2021년 텍사스 한파 때의 가격 폭등이 그 예다. 그럼에도 가격제가 보편화되는 둘째 이유는 재생에너지의 등장이다. 1990년대 전력시장 자유화의 동기는 효율성이었지만, 기후위기와 재생에너지 전환이 부각되면서 실시간 가격의 필요성이 커졌다. 이전에는 정부가 발전원을 조합해 공급하고 소비자는 맞춰 쓰는 방식이 효율적이었다. 재생에너지는 지역 편재성, 간헐성, 변동성 때문에 실시간 수요 관리가 중요해지며 실시간 가격이 필요하다.
여기에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블록체인 같은 디지털 메가트렌드가 겹쳤다. 디지털 기술은 중앙집중식 원자력·화력 중심 전력시장을 분산형·지능형 시장으로 바꾸는 기반이 된다. 재생에너지와 디지털 메가트렌드의 만남은 요금 체제를 벗어나 가격 체제로 가야 할 핵심 요인이다. 잘 짜인 시스템에서는 공급·소비를 실시간 예측해 수요·공급 연결성이 올라가고, 가격 신호에 따라 소비자가 유동적으로 전기를 쓰게 된다.
이제 이 길을 피할 수 없다. 전기는 대체재가 없고 수입도 어려운 필수불가결한 상품인데도 국내 전기 판매 사업자는 오직 한전뿐이었다. 한전이 전기를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해온 역할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 분산전원 활성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RE100(재생에너지 100%)은 물론 반도체 메가프로젝트 같은 대형 사업까지 지탱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존 요금 체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전기요금 체제 덕분에 정부와 한전은 주택용·농사용 전기의 적자를 산업용 요금으로 보전해왔다. 이런 모순이 지속되지 못하고 균열이 가고 있다. 대형 산업체들이 한전을 거치지 않고 전력거래소와 직거래를 추진하는 것이 대표적 예다.
지역차등요금제를 두고 행정안전부는 '지방우대지수' 같은 정책 요금을 추가하려 한다. 이런 '요금' 명목하에 쌓여온 정치권의 가격 개입 결과가 한전의 200조원 부채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전기의 대가는 전기가격으로 해방시키고, 정책 지원은 정부 예산으로 해야 한다. 전기가 가격으로 거래될 때 해묵은 비효율도 사라질 것이다.
■약력 △고철연구소장 겸 ESG 네트워크 대표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본부장 △기후에너지환경부 홍보 자문위원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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