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헌 해양수산부 차관
육지에서는 버스가 하루 운행을 멈춘다고 해서 마을이 고립되지는 않는다. 다른 버스나 지하철, 택시, 자가용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섬은 다르다. 여객선이 멈추는 순간, 육지와 단절된다. 여객선은 섬 주민에게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병원에 가고, 장을 보고, 일을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생활의 길이다. 관광객과 주민을 실어 나르고, 섬에서 생산한 농수산물과 섬에 필요한 생필품을 운송하는 생활의 동맥이다.
정부는 섬 주민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1956년부터 민간선사가 수익성 부족으로 운항을 포기한 항로를 '국가보조항로'로 지정해 운영해왔다. 정부가 건조한 국고여객선을 민간선사에 위탁하고, 운영비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현재 전국 99개 연안여객항로 중 29개가 국가보조항로로 운영된다. 하지만 그동안의 방식으로는 주민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선박 관리가 민간선사에 맡겨져 있다 보니 최대 25년 사용할 수 있는 국고여객선이 관리부실로 평균 17년 만에 폐선됐다. 국고여객선 예비선은 항로별로 분산 관리돼 다른 지역의 항로에서 운항공백이 발생하더라도 신속하게 투입하기 어려웠다.
이제 그 방식을 바꾸려 한다. 올해 5월 개정된 해운법에 따라 내년부터는 국가보조항로는 '공영항로'로 이름을 바꾸고, 공공기관이 직접 운영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이를 바탕으로 내년에 29개의 공영항로 중 서해안 지역 11개 공영항로를, 2028년에는 전체 공영항로를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에 위탁해 운영할 계획이다.
단순히 운영주체를 민간에서 공공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섬 주민의 이동을 '시장에 맡겨야 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기본적인 생활권'으로 바라보는 변화다.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안전이다. 해양교통안전공단의 선박·여객선 안전관리 전문성을 활용해 운항과 선박관리를 체계화하고, 전국 공영항로에 높은 수준의 안전관리체계를 적용할 예정이다.
주민들이 느끼는 불편함도 줄여나갈 것이다. 섬 주민에게 필요한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주민의 입장에서 찾아 개선할 것이다. 우선 고령의 섬 주민들이 생필품을 구입해 여객선에 싣고 들어가야 하는 불편을 덜 수 있도록 주문한 생필품을 선원들이 섬까지 운송해주는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운항의 연속성도 높인다. 항로별로 관리하던 국고여객선 예비선을 전국 단위로 통합 관리, 선박 정비 등으로 운항이 일시 중단되는 항로에 신속하게 투입할 계획이다.
섬은 우리 국토의 일부이자 많은 국민이 삶을 이어가는 생활의 공간이다. 섬에 산다는 이유로 이동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거나 필요한 서비스를 충분히 누리지 못해서는 안 된다. 어디에 살든 안전하게 이동하고, 일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여객선이 섬과 육지를 오가고, 주민들이 필요할 때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갈 수 있는 것,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그 가치를 잊기 쉬운 일상이다.
정부는 그 당연한 일상을 지키는 일을 국가의 책임으로 생각한다. 섬 주민에게 여객선이 단순한 배가 아니라 삶과 육지를 이어주는 든든한 길이 될 수 있도록, 국가가 그 길을 더욱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이어갈 것이다.
남재헌 해양수산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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