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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AI 시대, 대학의 역할

대학, 미지의 세계 연구에 도전
실패 무릅쓸 수 있는 안전망 보장
하나의 잣대로 모든 학문 재지말고
결정의 권한은 연구현장으로 이양
대학 어렵다고 연구비 전용 말고
연구자에게 투명하게 재투자해야

[fn광장] AI 시대, 대학의 역할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대학 교수

20세기 산업화 사회에는 대학이 지식을 만들어 전수했다. 그러나 대학이 지식을 독점한 시대는 끝났다. 2026년, 인공지능(AI) 시대에는 기계가 인간의 전유 영역이었던 지식 노동을 대신 하고 있다. 지식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그 내용도 달라지고 있다. 현실과 가상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이어지면서 지식의 실체마저 모호해지고 있다.

대학의 역할 자체를 다시 생각해야 할 중요한 순간이다. 담아내는 지식의 양으로 대학을 평가하던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 과거에 대학의 브랜드 파워와 학위증이 보증하던 능력도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증명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뿐 아니라 전 세계 대학이 마주한 현실이다. 지식의 양이 문제가 아니고 질이 문제다. 누가 세상을 바꾸는 연구를 내어놓는가가 승부의 관건이다.

대학의 졸업생들이 전수받은 지식으로 딛고 올라서던 첫 계단도 급격히 좁아졌다. 학벌이 무너진 것이 아니고, 학벌이 향하던 목적지가 흔들리고 있다. 목적지의 좌표를 찾지 못하면 대학은 무너진다.

산업화 시대에는 국가와 기업이 미래를 이끌었지만, AI 시대에는 대학이 미래 지식의 새 기준을 설계해야 한다. 대학이 세상을 설명하는 연구를 넘어 세상을 바꾸는 연구를 해야 한다. 만들어진 지식을 가르치는 대학을 넘어 미래를 만들고 열어가는 지식창조 인재를 길러야 한다.

변화에는 모멘텀이 중요하다.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AI가 인류의 지식 체계를 흔드는 위기의 시간인 지금이 곧 변화와 기회의 시간이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작은 움직임이 큰 변화의 나비효과를 만든다. 대학 스스로가 변화의 시대에 답해야 한다.

첫째, 대학은 지금까지 가 보지 못한 길,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연구에 도전해야 한다. 최소 10년을 내다보고, 가장 큰 문제에 먼저 투자해야 한다.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의학에 해결해야 할 미지의 연구 분야는 널려 있다. 해마다 교수와 연구자의 실적을 확인하고 결과를 요구하는 구조에서는 10년이 걸리는 어려운 문제에 손을 대기 어렵다. 교수들이 큰 문제를 피해 간 것이 아니다. 제도가 큰 문제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제도를 손봐야 한다.

둘째, 대학은 두려움 없이 실패를 무릅쓸 수 있는 연구에 도전해야 한다. 성공이 보장된 안전한 연구에 대한 유혹과 보상은 달콤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그러나 어려운 연구가 일단 성공하면, 그 성과는 훨씬 더 몸에 유익하고 그 자체가 지식 체계의 새로운 기준이 된다. 국가는 정치적 판단의 이유로, 기업은 눈앞의 이익의 이유로 쉽게 하기 힘든 어려운 연구를 대학의 연구자가 두려움 없이 실패를 감수하며 도전해야 한다. 대학은 이런 연구가 가능하도록 제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 두려움 없이 밀어붙이는 연구에 안전망이 보장돼야 한다.

셋째, 대학이 교수와 연구자를 평가하는 방식에 새 기준이 요구된다. 하나의 잣대로 모든 학문을 재지 말아야 한다. 글로벌 대학평가 기준이 문제라면, 이를 극복할 이 시대의 새 기준을 만드는 결기가 필요하다. 인용 색인이 연구 성과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 단행본과 비평, 국내 학술지와 정책 보고서, 특허와 기술이전, 창업으로 학문적 기여를 쌓아 온 분야도 있다. 같은 노력에 차등적 보상이 돌아가는 구조는 오래갈 수 없다. 기존 지표로 쌓아 온 성과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기존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연구 성과들이 보상받는 방향으로 보완하는 새 기준이 필요하다. 결정의 권한은 연구 현장으로 내려가야 한다. 우리 대학이 세운 기준을 세계가 따라오게 해야 한다.

넷째, 대학은 국가와 기업 연구비 수익 모두를 연구에 돌려줘야 한다. 대학 살림살이의 어려움을 이유로 다른 목적에 전용되어서는 안 된다. 대학의 연구자에게 투명하게 재투자해 연구 생태계의 건강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대학이 연구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교수, 대학원생, 학부생 연구자가 대학의 연구 체계를 지배해야 한다. 그래서 대학에서의 연구의 소중한 성과들이 국가와 기업의 미래를 이끌어 가야 한다.

대학이 스스로 답하지 못하면 시장이 바로 답할 것이다. 지식 생태계의 와해는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과 인류의 미래, 다음 세대의 미래가 함께 걸린 일이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AI가 물리적 시간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 그래서 더욱 시간이 없다. 변화의 결정적인 순간인 지금 바로 답하지 못하면, 대학은 영원히 답할 기회를 놓칠 것이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