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
우리 석유화학과 철강산업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글로벌 공급 과잉과 중국 등과의 경쟁 심화로 수익성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정부에 의해 탄소 다배출·난감축 업종으로 관리되는 등 탄소 배출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요구도 받고 있다. 가격경쟁력과 탄소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해결이 간단하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석유화학산업은 원유와 나프타, 천연가스 등 탄화수소를 원료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산업으로 이들 원료를 사용하지 말라고 한다면 산업의 존립기반마저 흔들릴 수 있고 철강도 기존 설비와 공정을 전면 교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4세대 고온가스로 소형모듈원자로(SMR)가 해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석유화학과 철강은 전력은 물론 엄청난 양의 열과 증기가 필요한바, 고온가스로 SMR은 헬륨 냉각재를 이용하여 경수로보다 훨씬 높은 온도의 열을 공급할 수 있다. 일본의 HTTR은 원자로 출구 온도 950도를 달성했고, 일본원자력연구기구(JAEA)는 이 고온열을 수소생산뿐 아니라 화학공장과 철강산업에서의 활용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석유화학제품을 만드는 원료를 하루아침에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원료를 가공하기 위해 사용하는 열과 증기부터 무탄소 에너지로 바꾸는 것이다. 여기에 수소생산까지 연결하면 무공해 수소환원제철의 경제적 타당성을 높일 것이다.
이는 원자력산업이 당면한 과제와도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원자력 입장에서는 SMR과 4세대 원자로 기술을 실제 산업현장에서 실증하고 상용화해야 한다. 세계 각국은 이미 우리보다 앞서가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초로 2023년 산둥성 스다오완의 HTR-PM의 상업운전을 시작하였고, 일본은 앞서 말한 대로 HTTR에서 950도 고온열과 안전성을 장기간 실증해 오면서 지금은 원자로의 열을 직접 수소생산설비와 연결하는 실증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엑스에너지가 Xe-100이라는 고온가스 SMR을 다우(Dow)의 텍사스 시드리프트 화학단지에 설치하기 위하여 정부에 이미 인허가를 신청한 상태다. 이제 원전은 발전소 부지만이 아니라 화학공장에 설치되어 전력과 공정에너지를 동시 공급하는 새로운 모델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정부가 SMR 민관협의체를 발족하기로 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여기서 고온가스로 SMR에 대해서도 논의되길 기대한다. 논의는 새로운 원자로를 더 만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석유화학·철강·정유 등과 결합하여 새로운 산업에너지 시스템을 만들고 더 나아가 해외 수출 기반을 확대하는 데에 중점을 두길 기대한다. 우리의 울산과 여수, 대산에는 대규모 석유화학단지가 있고 포항과 광양에는 세계적 철강 단지가 있다.
한 지역에 대규모 열.수소 수요가 집중돼 고온가스로 SMR을 산업단지와 연계해 실증하기에 매우 유리하다. 국내 실증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철강과 석유화학 등 기간산업이 처한 이중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 열교환기, 증기공급시스템, 수소생산설비, 고온소재, 엔지니어링과 운영기술을 함께 묶은 '산업 에너지 패키지' 수출 기반을 넓힐 수도 있다. 다소 뒤처진 우리의 고온가스로 SMR 개발과 상용화가 앞당겨지길 기대한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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