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공학한림원평의회 연차총회서
獨 지구관찰 프로그램 중대성 역설
인공위성 축적 지구관찰 데이터와
지역환경데이터 폭넓게 결합한 뒤
AI 융합해 실시간 홍수예보 구축
네팔참사 같은 재앙 막을 수 있어
윤의준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지난달 14일부터 17일까지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공학한림원평의회(CAETS) 연차 총회에 한국을 대표해 참석했다. 전 세계 31개국 공학한림원 대표단이 한자리에 모인 이번 행사는 주최국이 정한 주제 강연을 비롯해 회장단 회의, 이사회, 워킹그룹 회의, 총회, 친교 시간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출장길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필자를 비롯해 에너지 워킹그룹에 참여 중인 전문가 2인과 국제협력 담당 직원 등 총 4명의 대표단은 장거리 비행에 대비해 외국 항공 인천∼뮌헨 직항편에 오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륙을 앞두고 기체 엔진 고장으로 비행기가 전격 결항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우여곡절 끝에 일행은 3편의 다른 경유 항공편으로 뿔뿔이 흩어져 간신히 뮌헨에 당도하는 잊지 못할 해프닝을 겪어야 했다.
CAETS는 1978년 호주, 멕시코, 스웨덴, 영국, 미국 등 5개국 공학한림원이 창립회원으로 설립한 기구로 글로벌 공학기술 분야의 협력 증진과 공동 과제 해결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1996년 출범한 한국공학한림원은 내부 역량을 다진 후 1999년 CAETS에 가입을 신청했고, 까다로운 현장 실사를 거쳐 2000년 10월 비로소 정식 회원국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후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2020년에는 우리나라가 의장국으로서 총회를 유치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수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행사를 준비했으나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 회의로 대체해야 했던 점은 못내 짙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이번 총회 기간 우리 대표단은 미국, 중국, 영국, 인도, 일본, 스웨덴 등 주요국과 활발한 미팅을 이어갔다. 특히 올해는 스웨덴공학한림원과의 회장단 회의를 통해 양 기관 간 신규 협력사업을 추진하기로 잠정 합의하는 뜻깊은 성과를 거두었다. 인구 1060만명의 북유럽 공업강국 스웨덴은 고도의 산업 역량과 지정학적 환경 등 여러 면에서 한국과 매우 유사하다. 양국은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전략적 연대와 협력이 무척 중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향후 구체적 실천방안을 찾아보기로 했다. 네덜란드공학한림원의 제안으로 '반도체 워킹그룹'을 신설하기로 이사회에서 결정하였고, 한국이 정식 초청을 받았다. 인공지능(AI) 대전환 시대에 반도체가 날로 중요해지는 시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결정이며, 한국이 창립 회원국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이번 총회의 주제는 주최국이 당면한 전 지구적 이슈를 정하는 관례에 따라 독일공학한림원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측량, 이해 그리고 변화를 위한 지구 관찰'을 화두로 내세웠다. 독일 연방교육연구부 장관은 기조강연에서 독일의 우주항공 및 위성 연구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지구 관찰 프로그램의 중대한 역할을 역설했다. 지구라는 같은 배를 탄 세계 각국의 공학기술인들은 기후, 식량, 재난, 에너지 등 인류의 생존 과제를 심도 있게 토론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인공위성을 통해 얻은 방대한 관측 데이터가 진화하는 AI 모델과 융합해 과거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수많은 혁신을 이뤄내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독일의 한 선도 기업은 위성의 지구 관찰 데이터와 지역 환경 데이터를 폭넓게 결합한 뒤, 물리현상에 기반한 AI를 적용하여 고정밀 실시간 홍수 예보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구축할 수 있음을 보고해 참석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이를 지켜보며 최근 네팔에서 발생한 참혹한 대형 홍수 참사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주 공간에서의 정밀한 빙하 움직임 관찰과 데이터 기반의 선제적인 예측 시스템이 있었다면 철저히 대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짙은 안타까움이 남는다. 100년 만의 초강력 태풍과 기록적인 폭우가 더 이상 놀랍지 않은 일상이 된 지금 우리에게는 멀리서 본 지구 관측 데이터와 AI 모델의 정밀한 예측이 필요하다.
이번 CAETS 총회가 강조했듯이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통해 변화를 '관찰(Observe)'하고, 공학적 전문성으로 이를 '이해(Understand)'하며, 위험을 '예측(Anticipate)'하고, 그 지식을 실제 '행동(Act)'으로 연결해야 한다.
그리고 국경을 넘는 '협력(Cooperate)'을 통해 그 효과를 더욱 확장해야 한다. 인공위성 데이터와 AI를 융합한 신산업 육성은 대한민국에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한국도 인공위성 데이터와 AI를 적극 활용해 다가올 거대한 재난에 신속히 대응하고 새로운 산업적 기회를 창출하는 데 전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이다.
윤의준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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