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獨 기초연구에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 유지해 노벨상 석권
中 70년 넘게 장기 발전계획 시행
우리는 정권교체 때마다 정책 변경
기초과학硏서 영입 과학자 반발도
미래 위해 '정책 일관성' 이어가야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前 서울대 총장
올해도 어김없이 노벨상 시즌이 찾아왔다. 지난주부터 노벨 과학상(생리·의학, 물리학, 화학)과 문학상, 평화상 수상자 발표가 있었고, 오늘 저녁에는 경제학상 발표가 있다. 매년 노벨상 시즌이 되면 많은 국민들이 한국인 수상자가 나오기를 바란다. 특히 노벨 과학상에 대한 기대가 많은데, 안타깝게도 아직 염원을 달성하지 못하였고 올해 역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우리나라 과학계가 노벨 과학상 수상을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논의가 있었고, 응용 기술개발 위주의 국가 과학기술 정책 및 일천한 기초과학 지원 역사, 그리고 단기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제도 등이 주로 거론되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책의 일관성'이라고 생각된다.
주지하다시피 혁신적인 기초과학 연구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한 예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측한 중력파를 검출하여 201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LIGO(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 프로젝트는 아이디어 단계부터 최종 검측 성공까지 5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이처럼 긴 프로젝트에 미국의 국립과학재단(NSF)은 1980년대부터 시작하여 무려 30여년간 지원을 하였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한 프로젝트를 그렇게 오랜 기간 지원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동안 정권이 여러 번 바뀌면서 정책과 평가제도가 바뀌고, 특정 프로젝트에 특혜를 주었다는 시비에 휘말리는 등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장기 프로젝트에 대한 정책의 일관성이 없으면 혁신적인 성과를 얻기도 어렵다.
미국뿐만 아니라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국가들은 예외 없이 기초과학에 대해서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을 유지한다. 예를 들어 3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연구자들에게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소위 '하르나크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으며, 독일 연방정부와 주정부와의 특별 협약을 통해 최대 10년 후까지의 재정 규모와 예산 증가율을 미리 확정하기까지 한다. 이런 제도 덕분에 연구자들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안정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다. 또한 올해도 노벨 화학상을 추가하여 총 28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도 국립대학을 위주로 한 교수들의 기본 연구비 지원 제도를 오랜 기간 유지한 바 있다. 심지어 중국은 무려 70년 넘게 장기 과학기술 발전계획을 시행하고 있고, 올해에는 제15차 과학기술 5개년 계획(2026~2030년)을 시작하였다.
반면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사업은 안정적이지 못하다. 대표적인 예가 2024년도 국가 R&D 예산의 대폭적인 삭감일 것이다. 당시 윤석열 정부는 "과학기술 예산이 나눠먹기식으로 배분된다"는 이유로 R&D 예산을 전년 대비 15% 삭감하여 국내의 과학기술 R&D 생태계에 큰 타격을 주었다. 그때 미래 불확실성을 이유로 이공계 전공을 포기하고 떠난 대학원생도 많아서 그 피해는 아직도 복구 중이다. 또한 과거 정부의 사업이라고 약속을 안 지키는 경우도 많다. 막스플랑크 연구소를 모델로 노벨 과학상을 배출하겠다며 2011년 야심차게 출범한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이후 정부들의 외면으로 사업단별 연구비 예산이 줄어들어 영입했던 외국인 과학자들이 반발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근본적으로 우리나라는 단일회계연도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서, 다년 과제로 승인받은 연구사업도 해마다 예산을 따기 위해 정부와 협상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안심하고 장기적인 연구계획을 추진하기 어렵다.
물론 일본이나 중국은 정권교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장기 계획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권교체가 잦은 편인데, 이는 과거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빨리 고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업의 경우는 일관되고 장기적인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기초연구 지원 정책이나 국가의 에너지 정책, 교육 정책 등이 이러한 사업의 예가 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는 이런 사업에 대해서도 일관된 장기 계획이 없고, 정권이 바뀌면 정책의 변화가 너무 심하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선진국 모델을 따라가면 되었지만, 이제는 우리 자신만의 모델을 만들고 이를 뚝심 있게 추진해야 할 때이다. 올해의 노벨상 시즌도 대한민국 국민들의 여망을 저버리고 지나가고 있지만, 미래를 위해 장기 계획의 필요성과 '정책의 일관성'을 다시 한번 고민해 볼 시점이다.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前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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